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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할렐루야대회 강사 고훈 목사의 절규적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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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4-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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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할렐루야 복음화대회가 고훈 목사(안산제일교회)를 강사로 6월 13일(금)부터 3일간 프라미스교회에서 열린다. 대회의 주제는 요한복음 16:33에서 나온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이다. 오늘날 이 주제로 가장 담대하게 설교를 할 수 있는 목사중 한 명은 고훈 목사일 것이다. 대한민국을 온통 슬픔으로 물들게 했던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들중 단원고가 위치한 안산에는 47명의 학생들이 교회에 등록한 크리스찬 학생들인데, 고훈 목사가 시무하는 안산제일교회에서 가장 많은 7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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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할렐루야 복음화대회 강사 고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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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제일교회

최근 고훈 목사는 요한복음 21장 10~14절을 본문으로 "부활의 위로"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설교를 통해 고훈 목사는 어쩌면 많은 기독교인들이 궁금해 하는 왜 잘못없는 학생들이 희생되어야 했는지, 비극적인 참사가 일어날때 하나님이 어디에 계셨는지에 대해 전하고 있다. 또한 그 반대로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메세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시인인 고훈 목사는 다음과 같이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통곡을 전하고 있다.

"애들아 우리가 잘못했다. 용서해라. 애들아 우리가 잘못했다. 용서해라. 기회는 너희들의 목숨인데 우리가 문을 닫고 열지도 못하게 했구나. 위를 향해 달리면 사는 길이 있는데, 뛰어라 말대신 앉아 있으란 말로 너희를 바닷속에 가라앉게 했구나. 생사가 달린 위급한 상황인데 다 쓰고 남은 헌 목숨같은 우리 목숨을 살리기 위해 바닷속 깊은 곳에 너희들의 귀한 몸을 버렸구나. 너희들은 바다에서 숨쉬지 못하고, 우리들은 육지에서 숨쉬지 못하고. 너희들은 떠나면서 인사도 못하고, 우리들은 남은 자의 통곡이 되고. 사랑하는 자들아, 생존자들은 살아서 만나고 잠자는 자는 부활로 만나자. 그리고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오늘은 눈물로 안녕."

다음은 설교내용이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아비규환같이 아우성 치는 그 고통이 가장 큰 고통인줄 알았는데, 지금 우리는 더 고통스러운 뒷수습을 하고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제자들은 예수가 어차피 소망이 없는 줄 알았다. 예수님이 재판받는 것을 보고, 채찍을 맞고 피투성이 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예수님도 끝나고 자신들도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열심히 믿은 베드로까지도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렇게 처참하고 비참하게 끝났다.

그런데 주님이 부활하신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갈릴리 바다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두번이나 나타나셔서 베드로를 만나주시고, 제자들도 만나주시고, 의심많은 도마도 만나주시고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사람이 심리라는 것이 묘하다. 차라리 예수님이 죽어서 사건이 뭍어졌으면 좋겠는데, 주님이 살아나시니 대면하기도 어렵고 무슨 말을 하기도 어렵다. 십자가 사건때 보다 제자들은 지금이 더 비참하다. 그때 갈릴리로 주님이 찾아오셔서 3번 말씀하신다.

1.

첫 번째 말씀은 "베드로야 고기가 있더냐. 고기를 잡았느냐"고 하신다. 제자들은 고기를 한 마리도 못잡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자들은 3년전에도 고기잡는 것을 실패했다. 그때는 생계가 걸린 실패이다. 하루먹고 하루사는 사람들이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는 것은 심각한 실패였다. 그런데 그때 주님이 오셔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고 하시고, 고기를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았다. 오늘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예수님이 갈릴리 가서 만나자고 하시고,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 와 보니 저녁시간이다. 그냥 있자니 그렇고 기다리자니 예수님이 언제 오실 줄 모르고, 마침 저녁 물 때가 고기잡을 때이다. 제자들은 가만있자니 지루하고 마음이 착잡했으며, 더군다나 직업이 고기잡이였으니 고기를 잡았다. 그때 고기를 많이 잡아도 기쁨이 별로 없고 못잡아도 슬픔이 별로 없는 상황이다. 그냥 해보는 그물질이다.

그런데 주님이 오셔서 고기를 잡았느냐고 물으신다. 한 마리도 못잡았다. "너희가 잘될때도 나는 너희들이 주님이고, 너희가 못될때에도 변함없이 너의 주님이다. 큰 일을 당해서 해결이 필요할때도 너희의 주님이고, 일상의 작은 일에 시험들어 할 때도 너희의 주님이다. 작은 소일거리에도 나는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너희를 찾아간다. 큰 일만 너희를 찾아가고 시시한 일은 안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부활한 나는 숨소리 같이 너희가 어떤 처지에 있어도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쉬쉬하고 혼자 생각하는 그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사랑한다." 이것을 가르쳐 요한복음 13:1에 "예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라고 하셨다. 잘될때도 못될때도, 성공할때도 실패할때도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주님의 사랑이 그런 큰 사랑이지 사람들이 하는 조그마한 사랑이 아니다.

우리에게 응답은 그것이다.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6:24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라고 하신다. 주님은 우리를 어떤 경우에도 사랑하시고, 우리도 그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무슨 일을 당해도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너희들은 실패하고 나를 저주해도, 너희는 변함없이 내 종이고 사랑하는 자녀들이라고 하신다. 본문에서 시시한 일속에 주님이 오셔서 3년전에 귀한 일속에 기적을 베푸신 것과 똑같이 그 기적을 보여주신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보라. 나는 포도나무이고 너희는 가지이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나도 너희없이는 안해." 이 말에 대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큰 일은 능력이 없어서 못하고, 작은 일도 주님이 떠나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큰 일이든지 작은 일이든지 주님을 떠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항상 그런 말을 했다. 주님이 여기 계셨으면... 진도 앞바다도 그렇다. 한결같이 사람들은 '주님이 어디에 계셨는가' 라고 한다. '저 지경이 될때까지 하나님이 어디에 계셨는가' 라고 한다. 나사로와 똑 같다. 주님이 여기 계셨으면 우리 오빠가 안죽었을텐데. 야이로 회당장도 똑 같다. 주님이 일찍 오시고 여기 계셨으면 우리 딸이 죽지 않았을텐데. 하나님이 어디 계셨는가. 네로 황제와 도미시안 황제가 유대인들 6만명까지 지하동굴에 넣어서 문을 막아보리고 숨막아서 죽게했던 그런 환란의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에서 6백만 유대인들이 죽어갈 때, 화성 제암리교회에 30명을 넣고 일제가 불을 질렀을 때, 야월교회에 65명 넣고 공산당 프락치가 불을 질렀을 때, 진리교회에 48명을 넣고 공산당이 문준경 전도사와 같이 순교시킬때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 계셨길래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고 묻는다. "그들이 죄가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무엇을 하십니까."

그 모든 해답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아니하리라"에 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때 부활로 주님을 쳐다본다. 주님이 저희를 살려주시겠지.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부활로 응답하신다. 이 세상의 억울하고 어렵고 힘든 모든 일에서 부활을 쳐다본다. 독재자들로 부터 억울함, 이단들의 집단적인 테러, 원수들이 우리를 괴롭힐때 우리는 부활을 보고 죽는다. 그리고 주님은 그 모든 자에게 부활로 응답하실줄 믿는다. 혼자가 아니라 내 아버지가 나와 함께 계신다. "볼지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부활은 영원한 현존이다. 우리와 영원히 같이 계신다. 저기 진도에 주님이 계신다. 그 가운데도 함께 계신다.

2.

"애들아 와서 조반을 먹자"고 하셨다. 오른쪽에 그물을 던지라 하실때 던졌다. 그리고 들어올릴수 없도록 잡았다. 그런데 그물이 안찢어진다. 3년전에는 예수님이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해서 던졌더니 그물이 찢어진다. 그래서 요한의 배와 잡은 고기를 나눌 정도였다. 이번에는 그물이 안찢어졌다. 나중에 세어보니 고기는 153마리이다. 여기에 놀라운 묵시적인 은혜가 있다. 너희들이 3년간 나를 따를때 그물이 찢어지자 교인들이 다 흩어졌다. 목자를 치니 양떼들이 다 흩어져서 낙엽떨어지듯이 다 떨어졌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과 함께 있으시고 성령이 역사하실때는 아무리 교회가 커져도 교회가 찢어지지 않는다는 메세지를 주신다.

찢어지지 않는 그물에 고기를 잡는 순간에 요한이 빠르게 "베드로야 저 분은 주님이시다"라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익명으로 나타나셔서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해서 그물을 던지자 153마리가 잡히니 요한은 베드로에게 '저 분은 주님이시다'고 말한다. 주님이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웃 옷을 벗고 고기잡던 베드로가 겉 옷을 걸쳐입고 50미터 정도 거리를 헤엄쳐서 간다. 이것을 보면 베드로의 가슴속에는 자신이 부끄럽고 부족해서 그렇지 주님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다. 우리가 어떤 것을 잘못하고 못나다고 해서 그렇게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어쩌다 그런곳에 앉아있다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한 자기의 실수를 깨닫는다. 주님이라는 말을 듣고 누구보다 더 앞장선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하니 제일 먼저 달려가 무덤을 살핀 자가 베드로였으며,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에서 주님이라고 할때 헤엄쳐서 자기가 바닷가에 빠져있다는 것을 모르고 간 사람이 베드로였다.

'처음에 고기잡았느냐'는 것은 주님이 너희들의 시시한 일에도 관심을 다 가지고 그 신음소리도 다 안다는 것이다. 너희들이 아픔, 큰 것을 알고 작은 것이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안다는 것이다. '아침을 먹자'는 말씀은 우리 육신을 귀하게 생각하시는 것이다. 그 나라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다 준다고 하셨다. 주님은 우리의 육신의 문제에 굉장히 관심을 가지신다. 그래서 이 땅에 축복속에 살게하시고 강물을 주시고 공기를 주시고 그것들은 다 육신이다. 영혼이 무슨 공기나 밥이 필요한가. 그럼에도 늘 풍성하게 그 나라와 그를 구하면 너희 먹을 것을 내가 다 풍성하게 책임져 주신다고 하신다.

그런데 '고기가 있느냐' 물으실때 작은 시시한 사건속에도 오시는 주님이지만, 아침을 먹자는 말은 영국의 인사가 굿모닝이다. 비가 와도 무엇을 당해도 '굿모닝'이다. 우리나라는 절대 날씨 이야기를 안하고 밥을 먹었느냐고 묻는다. 우리는 부활 언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이 '밥을 먹었느냐', '아침밥을 먹었느냐' 하신다. 와보니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 숯불은 준비되어 있다. 숯불은 아무리 여름이라도 물속에 들어가면 춥다. 고기도 구워져 있고, 떡도 있고, 물도 다 준비되어 있다. 너희들이 잡은 것도 가져오라. 같이 섞는 것이다. 같이 아침식사를 한다. 작은 밥먹는 일까지 관심을 가져준 주님의 사랑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3.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세상의 물질보다도 세상의 사람들보다도 그 어떤 것 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는 것은 심각한 질문이다. 과거에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과거를 묻는 것이 아니며, 내일을 묻는 것도 아니라 오늘을 묻고 계신다. 그때 베드로가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하니, 주님은 "그러면 내 어린양을 치라"고 하신다. 주님의 양이다. 주님은 너 보다 더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다시 물으신다. 세상의 물질, 세상의 사람, 내 몸보다 더 사랑할 가치가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주님이 다 아십니다. 제가 어떻게 말하겠습니다. 하겠다고 대답했는데도 예수님을 부인했는데. 아닙니다. 저는 말을 못합니다. 주님이 말해 주셔야 합니다. 주님이 내 마음을 아십니다"라고 말했다. 그때 주님은 "그래 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하셨다. 왜 어린양인가.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라고 나온다. 이 말씀은 로마가 기독교를 박해할때 양과 염소 고기는 자기들이 먹고 가죽을 어린아이들에게 입혀서 원형극장에 내 보내면 배고픈 사자들이 양의 피 냄새를 맞고 양인줄을 알고 애들을 잡아 먹었다. 그 시대의 가장 피해를 당한 것은 어린아이들이다. 어느 시대에 보라. 베들레헴에서도 희생당한 것은 어린아이다. 어린이가 다 희생을 당했다. 주님입장에서 볼때 저것은 내 어린양이다. 어린양이라는 것은 주님 자신도 양이시다. 그래서 희생양이다. 속제의 제물이다. 그래 내가 죽자. 내가 희생양이 되어서 너희를 다 건지자. 이것이 희생양이고 어린양이다.

오죽했으면 제가 하나님께 억지 기도를 했겠는가. "하나님 세월호 희생자들은 절대 지옥이라든지 어디 다른데 데리고 가시면 안됩니다. 문 하나는 열어 놓으셔야 합니다. 이 아이들은 죄가 없습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주님 어떤 경로이든지 하늘나라로 부활로 인도하여 주셔서 살아있는 자는 생존해서 만나고 죽은자는 부활로 만날수 있도록 길 하나만 열어주세요."하고 계속 이 기도를 드렸다. 이 기도에 대해 목사로서 후회하지 않는다.

"애들아 우리가 잘못했다. 용서해라. 애들아 우리가 잘못했다. 용서해라. 기회는 너희들의 목숨인데 우리가 문을 닫고 열지도 못하게 했구나. 위를 향해 달리면 사는 길이 있는데, 뛰어라 말대신 앉아 있으란 말로 너희를 바닷속에 가라앉게 했구나. 생사가 달린 위급한 상황인데 다 쓰고 남은 헌 목숨같은 우리 목숨을 살리기 위해 바닷속 깊은 곳에 너희들의 귀한 몸을 버렸구나. 너희들은 바다에서 숨쉬지 못하고, 우리들은 육지에서 숨쉬지 못하고. 너희들은 떠나면서 인사도 못하고, 우리들은 남은자의 통곡이 되고. 사랑하는 자들아, 생존자들은 살아서 만나고 잠자는 자는 부활로 만나자. 그리고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오늘은 눈물로 안녕."

하나님이 어디 계셨는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무엇을 했느냐고 한다. 아니다. 인간이 지은 죄이다. 이땅의 선주와 선장들이 죄를 지어 죄없는 아이들이 죽었다. 이것 한가지 보라. 우리 교회가 제일 속았던 것이 구원파이다. 구원파에 속아서 거의 다 저쪽에서 넘어갔다가 하나님이 건지신 것이 우리 교회이다. 열매로 안다. 별 이야기를 다해도 그 열매를 보면 안다. 소경을 따라간 사람이 소경과 같이 웅덩이에 빠진다. 그 사람들은 감언이설로 예배당은 필요없다, 십일조는 필요없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모두가 속았다. 이번에 구원파의 실체가 드러났다. 소위말하면 발본색원이라는 것이 있다. 근본을 찾아서 원리까지 다 뿌리채 뽑아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구원파의 이단의 실체를 하늘같이 믿고 속았던 자들, 지금 가장 가슴아픈 것은 선주나 선장이나 문제가 아니라, 구원파에 속아서 자신들의 재산도 다 집어넣고 평생동안 속아서 살았던 우리 교인들을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이 교회 개척자들이 다 속아서 구원파에 넘어갔다. 구원파들은 자신들은 구원받았는데 저것들은 구원못받아 지옥간다고 한다. 유대인과 다를것이 없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선민이라고 생각하고, 저것들은 택함받지 못했다며 이방인들을 멸시했다. 구원파들도 유대인같이 구원파 식구들만 구원받았으며, 구원받지 못한 것들은 죽든지 말든지 관심없다는 극도의 이단의 교만이 사람을 버린다. 잘못된 신앙이 얼마나 무서운가.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어린양의 희생, 이 아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신다. 사람이 죄로 말미암아 죄없는 아이들이 수장당했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잘못된 죄속에서 이 민족을 지도자부터 시작해서 다 고침을 받아... 어디 하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위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하나도 정직한 사람 똑바른 사람이 없고, 그곳에서 얻어먹고 살고 빌붙어서 살고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누가 드러낼수 있었겠는가. 우리 아이들이 지금 그것을 드러냈다.

우리가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이대로 가면 저 아이들의 희생이 너무 안타깝지 않는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우리가 아무렇게 살면 주님의 십자가 죽음이 너무나 억울하다. 나는 너희들을 위해서 바르게 살게하려고 십자가에서 죽었는데 너희가 그렇게 세속적으로 살고 하나님보다 더 세상을 사랑하고 살면 예수님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는가.

아이들이 천국에 가서 우리를 바라본다. 아이들의 죽음이 우리 민족을 회개의 길로 제물이 어린양이 되었는데, 한국은 회개하지 못하고 여전히 정치와 경제가 타락하고 더럽고 치사하고 애들이 보기에 고개를 돌릴만큼 그런 나라가 되면 얼마나 비극인가. 어린양 희생물로 삼아서 우리가 깨닫고, 우리가 죽을 자리에 너희들이 죽었구나, 우리가 가서 수장할 자리에 어린 죄없는 너희들이 어린양으로 죽었구나 하는 생각만 가진다면 이 땅에는 결코 헛되지 않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역사가 일어날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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