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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선과 방황의 서울침례교회식 가정교회에 대한 신학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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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ㆍ2010-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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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가 주축이 되어 ‘전도’에 주력한다는 ‘가정교회’프로그램은 교회성장을 염원하는 목회자들의 시선을 확 부여잡기에 충분했다. 어디 그뿐인가. 뜨뜨미지근하던 성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성도간 영적 친교를 통해 서로의 삶을 나누며, 선교 열정이 높아지는 긍정적인 면도 가정교회의 장점이라며 적극 추천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초대교회를 지향한다는 가정교회 시스템, 그중에서 가장 폭넓게 미주한인교계에 소개되어 있는 휴스턴서울침례교회 스타일의 가정교회에 대해 그간 우려와 거부의 목소리도 제기되어 왔다.

교 인간 수평이동을 막고 불신자 전도에 포커싱한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교회의 주일예배에는 참석해도 ‘가정교회(목장)’에 참석하지 않으면 제적될 수 있다는 점, 매주 가정교회 모임이 우선순위를 갖다보니 정작 교회의 부서별 모임과 행사는 도외시된다. 또한 목장을 작은 지역교회로 인식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성찬과 세례, 권징과 치리를 행해지지 않는 교회가 교회론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지적, 성도들의 목사는 가정교회를 관장하는 목자고, 담임목사는 목자의 목사라는 인식, 신학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목자가 목장을 인도할 때 오는 문제점 등이 주로 회자되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미주교계에서는 처음으로 가정교회에 대해 신학적으로 조명하는 글이 발표되었다. 이에 본지는‘가정교회’에 대해 공론해 보고자 종교개혁일을 앞두고 요약, 보도한다. <편집자주>

탈선(脫線)과 방황(彷徨)의 휴스톤서울침례교회식 가정교회에 대한 신학적 연구

최은수 교수 (Ph.D., University of Glasgow,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교수 역임, 버클리 연구교수, 북가주교회협의회총연합회 신학조사위원회 초대위원장, 북가주한마음교회 담임)

1. 시작하는 말

성 경과 교회 역사를 통해 볼 때 새로운 운동은 살아 있는 유기체 같아서 성장과정에서 다양한 진통을 경험하여 왔다. 휴스톤 서울침례교회에서 최영기 목사를 통해 시작된 가정교회도 동일한 맥락에 있다. 이 가정교회가 1993년에 시작되어 대략 17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 인생으로 치면 사춘기요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사춘기에 나타나는 가장 흔한 현상이 탈선 (derailment)이다. 단어의 의미를 그대로 풀어보면 기찻길과 같은 선로에서 이탈했다는 뜻이다.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난 이후 심각한 방황을 겪게 된다.

가정교회가 북미주를 비롯하여 세계 곳곳으로 소개되면서 다양한 의견들이 제기되었다. 가정교회를 도입하는 교회와 반대하는 교회의 상충된 견해들이 있었고, 도입을 결정한 교회 내부에서 갈등이 표출되어 나오기도 했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 예장 고신과 예장 합신을 중심으로 신학적인 검토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도 견해차가 드러났다. 이는 극심한 침체와 성장 정체 상태에 있는 목회 현장의 아우성과 필사적으로 돌파구를 찾아 헤메는 목회자들에 대한 신학자들의 처절한 연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도 신학자들의 다양한 견해와 목회 현장의 소리들을 접하면서 동일한 심정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교회들이 경쟁적으로 가정교회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탈선의 징후들이 구체화 되고 방향 감각을 상실해 가는 모습을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남가주 LA지역에서 비교적 안정적이고 정상적이었던 한 교회가 가정교회를 무리하게 적용하는 과정에서 분열되었고, 성도들은 깊은 상처를 안은 체 뿔뿔이 흩어졌고, 심지어 가정교회의 핵심 멤버라고 할 수 있는 ‘목자’조차도 가정교회를 실시하지 않는 교회로 옮겼다는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북가주를 위시한 여타의 지역에서도 이와 유사하거나 보다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공통된 현상은 ‘목자’들의 불필요한 특권의식과 월권, 정상적인 신학교육을 받은 목회자들과의 갈등, 가정교회 참가자들과 비 참가자들 간의 이질감, 가정교회 간의 세속적인 무한 경쟁 의식, 교회 간 성도의 수평이동을 조장하는 막무가내식 인간관계 위주의 전도 등이다. 이 외에도 가정교회 문제에 대하여 질의하는 현장 목회자와 해당 교회 성도들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다. 심지어 어떤 교회에서는 가정교회를 실시하려던 목회자가 사임하였고 성도들은 자신들의 교회가 가정교회가 아님을 선포하기까지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휴스톤서울교회식 가정교회에 대한 각종 자료들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현재의 부정적인 면이 후천적 요인이라기 보다는 선천적, 즉 태생적 탈선의 유전인자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2. 휴스톤서울교회식 가정교회의 태생적 탈선의 유전인자들

세 가지 주요 요인들로 나누어 신학적 비판을 할 것이다: 성경성(Biblical Foundation)의 근본적 오류, 역사성 (Christian Historical Foundation)의 치명적 오류, 정통성 (Protestant Orthodox)에 대한 도전.

2.1. 가정교회의 태생적 탈선의 첫 번째 유전인자: 성경성의 근본적 오류

첫째로, 자의적인 성경해석의 문제를 드러냈다. 성경은 성경 자체(Text itself)로 말씀하도록 해야지, 환경이나 상황(Context)의 전제를 가지고 그것을 합리화시키는 수단으로 텍스트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

하 지만 휴스톤서울교회의 최영기 목사는 가정교회로 세워지는 평신도 목회 (2010년 최신판 두란노, 이하 가정교회)에서 가정교회가 가진 세 가지 성경적인 축을 설명하면서 다분히 자의적이며 주관적인 성경 해석의 오류를 드러낸다. 먼저, 마태복음 28장 19절-21절 상까지를 다루면서 그는 ‘가서 제자를 삼아’라는 부분을 ‘제자를 만들지 않는 교회는 교회 간판을 내려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는 옷을 빨지 않는 세탁소와 사진을 찍지 않는 사진관이 각각 간판을 내려야 하는 것과 비교한다. 그래서 자의적이고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그 본문의 화자는 예수님이고, 1차적 청중은 12제자 즉 사도들이다. (16절) 성경은 적용의 독특성과 보편성이 있다. 이 본문은 이 둘 다를 포함한다. 백 번 양보해도 이런 식의 주장은 논리적 비약이다.

아울 러 최영기 목사는 교회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이 비신자 친구가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면서 찾아갈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요즘 같이 기독교인의 숫자가 정체 내지는 감소하고 있는 분위기인데도, 그는 부흥하는 소수의 교회들을 예로 들면서 사람들이 몰려 오기 때문에 교회와 교인들이 비신자들에게 찾아갈 이유가 없다고 단정 짖는다. 자신의 교회에서는 기존 신자들의 유입을 가능하면 막으려 한다고 하면서 주보에 그런 내용을 게재한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목회의 순수함이 느껴져 좋아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2천년 교회 역사를 통해서 드러난 바로는 그런 주장을 통해 반사이익을 얻어 상대적 부흥과 성장을 이룩한 경우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에 순수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이 또한 주관적인 논리적 비약이다.

다음으로, 최영기 목사는 마가복음 3장 13절-15을 통해 ‘듣고’가 아닌 ‘보고’ 배우게 하는 가르침을 주장한다. 그는 본문에서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를 통해 보고 배우도록 하시기 위함이라고 단정한다. 이런 식의 해석을 보면서 그의 가정교회에 대한 전제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그의 해석이 전혀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전제를 합리화 시키기 위해 본문, 즉 텍스트를 이용하는 습관은 좋지 않다. 최영기 목사는 ‘보고’를 통해 삶을 강조하는데, 실제로 예수님은 12제자를 부르시고 먼저 ‘듣도록’ 하셨다. 누가복음 6장 12절 이하에서 12사도를 부르시고 20절부터 49절까지 산상수훈 또는 평지수훈을 들려주셨다. 27절에는 예수님은 너희 듣는(you who hear me)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라고 하셨다. 로마서 10장 17절의 말씀을 깊게 상고하기를 권하고 싶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최영기 목사의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성경 해석의 절정은 에베소서 4장 11절-12절을 통해 드러난다. 그는 이 본문을 통해 목회자의 역할과 목자와 집사를 포함한 평신도들의 사역을 구분한다. 최영기 목사는 이것이 ‘성경적인 분담의 사역’이라고 강변한다. 더 나아가 그는 ‘많은 전통적인 교회가 힘을 잃고 있는 것은 이러한 성경적인 사역의 분담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이런 무리한 주장을 하는 데는 ‘성도’라는 말과 ‘봉사’라는 그리스어가 집사 용어와 같다는 데 있다.

아무 전제 없이 정상적인 시각에서 본문을 살펴 보자. 11절은 예수께서 어떤 사람들을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로 교회에 주셨다고 하신 말씀이다. 12절은 주님께서 자신이 부르신 사역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구별하여 세운 사람들을 잘 교육시키고 준비시키게 하셨으며, 봉사의 사역이 중단 없이 진행되도록 하셨으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건설해 나갔다는 말씀이다. 이 구절을 통해 어떻게 목회자와 평신도의 사역 분담을 논할 수 있겠는가? 최영기 목사는 ‘목회자들에게 할 일을 다 빼앗겼기 때문’에 ‘성도들은 성도들대로 보람 있는 사역’을 찾을 수 없다고 억지를 부린다. 가족교회 논리를 합리화 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억지로 풀어도 된다는 말인가!

둘째로, 상충되는 논리를 주장함으로 스스로 비성경적이라는 사실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최영기 목사는 ‘신약 성경을 읽어 보면 우리는 당시의 교회 형태가 가정교회였음을 발견’한다고 단언한다. 그는 가정교회라는 전제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성경의 중요한 언급들을 간과하는 잘못을 범하였다.

사 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가 설교한 후 삼천 명 정도가 회심하였다. 2장 46절에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라는 말씀이 등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성전(Temple Courts)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누구든지 모일 수 있는 곳이었다. 적어도 대대적인 박해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울러 여러가지 상황에 의해 교회의 집회처가 특정인의 가옥이 되었다는 점은 최영기 목사가 주장하는 가정교회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최영기 목사는 ‘신약 성경 시대에는 모든 성도가 다 평신도이고, 모든 성도가 다 목사였다’고 단언한다. 이는 현재의 평신도 개념을 성경 속으로 가지고 들어가 억지로 끼워 맞추면 치명적인 오류가 될 수 있다는 전형적인 실례다. 평신도를 언급하고, 목사를 말하려면 용어 사용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에베소서 4장 12절에 엄연히 목사라는 명칭이 등장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모두가 평신도이자 목사라고 주장하니 이 얼마나 우스운 광경인가 말이다. 더 나아가 그는 이 구절을 통하여 목회자의 역할과 평신도의 역할을 구분하는 웃지 못할 상황을 연출했다. 그리고 이것이 성경적인 역할 분담이라고 자신 있게 공언했다. 이런 모순을 어떻게 설명 할 수 있겠는가.

2.2. 가정교회의 태생적 탈선의 두 번째 유전인자: 역사성의 치명적 오류

최 영기 목사는 ‘성경 하나 붙들고 기도하면서 허우적거리다 보니까 이 자리에까지 도달한 것’ 같다는 고백을 한다. 자신이 읽은 책도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의 책과 랄프 네이버의 저서가 전부라고 했다. 이런 언급들은 본인 스스로 역사성의 결여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몇 가지 핵심적인 문제를 지적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 역사성의 치명적 오류는 신약적 원형 교회를 추구하는 데서 기인한다.
‘초 대교회로 돌아가자’ ‘신약성경 시대로 돌아가자’ ‘신약 교회의 회복’ ‘성경적인 교회의 회복’ 등의 모토가 자주 등장한다. 교회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필자에게 이러한 말들은 가장 우려가 되는 표현들이다. 왜냐하면 2천년 교회 역사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아니면 하나의 운동 차원에서 위험하게 외쳐왔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정신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시도가 초래할 혼란이 문제다.

기독교의 생명은 역사성이다. 역사성이 제외된 성경은 허구나 미신에 불과할 것이다. 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하는데 드는 대가치고는 너무나 크고 치명적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세계 최초의 교회가 세워지면서 성령 없이 교회 없다는 등식을 갖게 되었다. 성령께서 함께 하지 않았다면 역사적인 교회는 일찌감치 명멸했을 것이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정신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로마 카톨릭이 성경과 교회 모두에게 동등한 권위를 부여함으로 초래된 교회의 혼란과 무질서를 종교개혁가들이 ‘오직 성경’이라는 원칙을 중심으로 바로 잡고자 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개신교의 ‘오직 성경’ 원칙은 기독교의 역사성을 더욱 강화시키는 선언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님과 더불어 생명력을 유지해온 교회의 역사를 무시하고 원시적인 신약교회로 돌아가겠다는 발상이 결코 정상일 수 없다.

둘째로, 역사왜곡과 역사의식 결여의 문제다.
최 영기 목사는 평신도 중심의 사역 개념에 집착한 나머지 역사왜곡도 서슴없이 행하고 있다. 그는 ‘목회자가 없으니까 평신도가 지도자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라고 주장한다. 신약성경 시대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고 보았더라도 이런 왜곡된 표현을 하지 않았을 것인데 하는 생각이다. 신약성경의 원형 교회는 소위 평신도가 아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전문사역자(목회자)들을 중심으로 일사 분란하게 체계를 잡고 있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부터 하나님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회당을 예비하셔서 장로들을 지도자로 삼아 체계 있게 유지케 하셨다. 예수님의 사역 당시에도 수많은 회당들이 존재하였고, 중앙조직인 대산헤드린 공의회를 비롯하여 각지에 소산헤드린 공의회가 있었다. 이 역시 장로들이 지도자였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초대 기독 교회로 수많은 회심자들이 유입되었는데, 유대교의 지도자들인 다수의 장로들도 포함되었다. 역사적 교회의 탄생을 위해 예수님은 12사도를 가까이에서 훈련시키셨고, 70여 제자들을 비롯하여 사역자들을 예비하셨다. 이 당시 초기 형태의 삼중직제가 있었는데 사도, 선지자, 교사 등이다. 이들은 카리스마틱한 성격을 띄고 있었다.
초대교회가 빠른 속도로 팽창하면서 후기 형태의 삼중직, 즉 감독(목사), 장로, 집사로 자연스러우면서도 신속하게 바뀌었다. 초대교회 당시 이 직분들은 모두 목회직의 성격이 강했다. 다시 말해 감독, 장로, 집사 모두 소위 가정교회가 아닌 역사적 지역교회의 담임 사역자로 섬겼다는 사실이다.

종 교개혁가들은 최대한 신약교회의 모델에 충실하면서 목사, 장로, 집사직을 도입하였다. 이것이 바로 개신교회들이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직분의 구조적 틀이다. 종교개혁의 대원칙인 모든 직분의 평등성이 근간을 이룬다. 하지만 교회의 질서를 위해 기능적으로 신학을 수련하여 전문목회자가 되는 목사와 여타의 직분이 구별되었다. 기능상 분류이지 계급이나 등급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역사 인식을 통하여 신약교회와 종교개혁 이후 교회의 직분들이 갖는 연속성과 비연속성을 기독교 공동체의 틀 속에서 혼동 없이 이해하여야 한다. 휴스톤서울교회식 가정교회는 이런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향이다. 최영기 목사의 왜곡된 주장과는 완전 다르게, 신약교회의 탄생을 위해 전문사역자들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제한하거나 무시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될 일이다.

휴스톤서울침례교회의 최영기 목사는 ‘성경이 없으니까 직접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라고 주장한다. 이 또한 초대교회 역사에 대한 무지요 왜곡이다. 앞에서 지적한대로, 회당 예배가 보편적이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초대 교회는 회당 형식을 상당 부분 원용하였다. 초대교회는 시편을 비롯한 구약을 예배 때 사용하였고 복음서의 내용이 구전되다가 기록되면서 함께 사용하였다. 회당예배와 함께 성전예배도 초대교회 예배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지만, 주후 70년 로마군대의 예루살렘 공격으로 성전이 파괴됨으로 종결되었다. 최영기 목사의 이런 주장은 자칫 초대교회 영지주의 계열 이단인 말시온과 같이 유대적인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이유로 구약성경 전체를 난도질했던 잘못을 범할 수 있음이다.

셋째 로, 반역사적 태도의 문제다. 현대사회는 포스트 모던니즘(Post Modernism)과 후기 구조주의(Post Structuralism)로부터 사상적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이 두 이데올로기의 가장 큰 특징은 해체(deconstruction)다. 이런 주장들은 생명줄 같이 연결된 교회 역사의 해체 및 단절을 초래 할 수 있다.

이 런 견지에서 최영기 목사는 신약 성경 시대를 제외한 모든 역사를 해체시키려는 의도를 연상케한다. 가정교회만이 성경적인 교회라는 자신의 주관적인 신념을 합리화 하고 관철시키기 위해 그 외의 교회 역사를 폄하하였다. 더군다나 모든 개신교회의 역사적 근거가 되는 16세기 종교개혁도 자신이 생각하는 주관적인 가정교회의 원형을 복원하는데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관점에서 볼 것 같으면, 지상의 교회들은 초심을 잃어 버리고 변질되어 갔다는 주장이다. 물론 교회사의 진행 속에서 인위적인 요소들의 개입으로 변질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편협하고 전제된 생각으로 교회 역사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반역사적 태도가 드러나는 것은 당연한일이다.

최영기 목사는 “개인적으로 30년 마다 크고 작은 규모의 종교 개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분은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을 찾으려는데 있는 듯 하지만, 기성교회를 완전히 해체하고 새로운 조직과 질서를 세우려 하는 이런 주장을 함부로 하면 기독교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확률이 높아진다.

2.3. 가정교회의 태생적 탈선의 세 번째 유전인자: 기독교 정통성에 대한 도전

최 영기 목사는 <구역조직을 가정교회로 바꾸라(2009년판 나침반)>는 저서를 통하여 기존의 구조적 틀을 가정교회로 전환할 것을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구역이라는 명칭을 가정교회로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다. 기존의 핵심 구조를 해체시키고 새로운 구조를 세우려는 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몇 가지로 나누어 세밀하게 고찰하여 보고자 한다.

첫째로, 정통 교회론에 대한 정면 도전의 문제이다. 최영기 목사는 초대교회로부터 발전된 교회론 뿐만 아니라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탄생한 프로테스탄트 교회론도 폄하하고 무시하는 듯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이 모든 역사적인 발전과 개혁적인 시도들이 신약교회의 원형을 복원하는데 실패했다는 견해에 근거한다. 그렇게 실패로 규정하고 기존의 교회론을 해체시켜야 자신이 주장하는 가정교회론이 완전히 새롭게 건설될 수 있는 입지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최영기 목사는 가정교회가 지역교회임을 천명하면서 정통 교회론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공공연하게 가정교회를 독립된 개척교회와 동일시한다. 특정 교단의 우산 아래 여러 지역교회들이 있듯이, 그가 말하는 가정교회도 그런 종류의 구조 속에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망설임 없이 “초대교회의 성장은 성령의 힘을 제한하지 않는 교회 구조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라고 못 박는다. 동시에 그는 “전통적인 교회 구조는 성령의 역동적인 역사를 제한합니다. 평신도를 무력화 시키기 때문입니다.”라고 강변한다. 이런 비성경적, 비역사적 교회론은 치명적인 모순과 자가당착에 빠진다.

최 영기 목사는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을 마치 자신이 휴스톤서울교회로 부임해서 한 지역교회의 체재를 가정교회 형태로 바꾸는 정도의 수준으로 평가절하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단한 만용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정신을 놓아 버렸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 미 알려진 대로, 16세기 종교개혁은 단지 그 시대의 결과물이 아니라 중세 중후반기부터 시작된 교회개혁운동의 연장 선상에서 이해 해야 한다. 종교개혁 전 개혁세력들의 활동 기간과 16세기 종교개혁, 그리고 개신교 정통성을 확립하는 기간까지 합하면 족히 수 백 년의 세월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을 통하여, 사선을 넘나드는 고비를 넘어서 프로테스탄트 교회론이 확립되었음이다. 휴스톤서울침례교회식 가정교회는 과연 몇 년을 보냈는가? 이제 겨우 17년 정도이지 않는가. 어느 정도의 시련과 희생을 감내해야 했는가? 최영기 목사가 회고하는 대로 초창기에 10 여 명 정도가 가정교회로의 구조 변경에 동의하지 않아 이탈한 것이 고작이지 않은가. 최대치로 양보한다고 해도 교회론적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휴스톤서울교회식 가정교회의 목자는 완전히 지역교회의 목사인데, 요즘 정상적인 신학교육을 받고도 목회자의 자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목회자로서의 소명을 점검한 것도 아니고 신학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은 것도 아닌데 한 지역교회를 책임지게 하는 행위야말로 무모하고 무책임하다는 생각이다.

최영기 목사는 가정교회가 목회자의 부담을 덜어 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필자의 판단으로는 양육강식과 무한경쟁의 지역교회 목회 현장으로 덜 훈련된 순진한 양들을 내모는 느낌이다. 특히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국고로 지원받던 국가교회 형태에서 지금처럼 교인들의 자발적인 헌금으로 운영되는 체제로 전환되면서 교회 간에 극심한 경쟁이 시작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현대 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에서 적자생존의 경쟁으로 내몰리는 지역교회의 최전선으로 전문적인 훈련도 받지 않은 장교(가정교회 목자)를 배치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음이다.

둘째로, 가정 교회 성공을 위해 필요한 새 목회 방법의 가장 큰 도구로 기도를 설정하면서 이단 내지는 이단성 있는 사람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최영기 목사는 가정교회로 세워지는 평신도 목회에서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가 인도하는 세미나에 참석하여 기도에 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기록했다. 최영기 목사의 본 저서가 처음 발간된 연도가 1999년 9월 9일이었다. 이 때는 윤석전 목사의 이단성 논쟁으로 교계가 벌집 쑤셔 놓은 것처럼 어수선하던 시기였다. 1997년부터 이단전문가들에 의해 윤석전 목사의 이단 시비가 본격화 되었고, 1998년부터는 윤석전 목사가 속한 한국기독교침례회 내부에서 이단 논란이 격화 되고 있었다.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는 이단으로 규정된 베뢰아식 귀신론 계열의 이단성 혐의를 받았다. 귀신론 이단으로 정죄된 김기동 목사도 윤석전 목사가 자신의 제자라고 공표하기도 했다. 이단전문가들이 제기한 윤석전 목사의 이단성 주장은, 첫째로, 이중아담론이다. 창세기 1장의 인간은 동물적 존재로 창조되었고, 창세기 2장의 인간이야말로 영적 존재요 생령이 된 자라는 주장이다. 두 번째 이단성 주장은 이원론적인 인간관이다.

윤석전 목사는 영, 혼, 육 삼분설을 말하면서, 살아서는 혼이 육에 붙어 있다가 육신의 죽음 후에 혼은 영에 붙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윤석전 목사에게 영은 인격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영과 육을 아우르는 전인격적인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세 번째 이단성 주장은 십자가 마귀 대속론 문제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대속적 희생 제물이 되신 것이 아니고 마귀가 죽었다는 해괴한 논리다. 네 번째 이단성 주장은 잘못된 죄관과 편협한 구원관이다. 윤석전 목사는 모든 죄의 책임을 마귀에게 돌린다. 이상의 혐의들이 당시 회자되던 내용들이다.

급기야 윤석전 목사는 2000년 예장 합신 총회에서 이단 내지는 이단성 짙은 주장을 했다고 규정하고 참여금지 결정을 받았던 것이다. 이런 결정의 근거는 윤석전 목사가 삼위일체론적 입장에서 성령께서 어떤 피조물의 인격이나 그 생활에서 나온다는 주장을 함으로 성령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을 했다는 점, 윤석전 목사의 예지예정론이 구원에 이를 자가 알려져 있을 뿐이지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신학적 오류, 윤석전 목사가 응답 받는 기도를 말하면서 응답을 호전적인 전투 개념으로 주장하였기 때문에 반공동체적, 반사회적 경향을 보이게 된 점, 비성경적인 기도의 단계를 임의로 설정한 점, 역사적 기독교 공동체의 상호 유기적인 관계와 섬김의 자세가 아니라 목회자를 절대시하여 신격화의 오해를 불러 올 수 있는 주장 등에 근거한다.

최영기 목사가 윤석전 목사에 대한 이단 내지는 이단성 짙은 혐의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본 저술을 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1999년 이후로 그의 책은 인기리에 출간되고 있었기 때문에 만일 그가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었다면 얼마든지 교정할 기회가 있었다고 본다. 2010년 최신판까지 윤석전 목사에 대한 내용이 버젓이 있는 것을 보면, 최영기 목사가 윤석전 목사의 이단성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밖에 달리 설명 할 길이 없다. 이대로라면, 휴스톤서울교회식 가정교회의 최영기 목사는 개신교 정통 라인에 있지 않다는 말이 될 확률이 대단히 높다.

셋째로, 한국교회의 정통성 흐름을 잘못 파악하고 있는 문제이다. 최영기 목사는 한국 교회의 외형적 성장만을 기준으로 1단계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주도했다고 말한다. 2단계는 남서울교회 홍정길 목사,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 등이 제자훈련을 통해 교인들의 영적인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고 본다. 최영기 목사는 다음 단계인 3단계가 바로 가정교회라고 생각한다. 그런 견지에서 그는 자동차 비유를 든다. 1단계는 엔진을 달아 주었고, 2단계는 지도를 마련해 주었고, 3단계인 가정교회가 자동차를 운전하여 목적지로 간다고 한다.

여기서 최영기 목사가 자가당착에 빠지고 말았다는 판단이다. 왜냐하면 역사신학자로서 필자의 견해로 볼 때 1단계와 2단계 모두 정통 주류 라인이라기 보다는 비주류이기 때문이다. 1단계의 조용기 목사로 인하여 한국교회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장로교회가 외형은 장로교, 내면은 순복음 경향을 띄었던 것은 부인 할 수 없다. 2단계를 통해 많은 교회들이 제자훈련을 도입하면서 일대 유행을 일으켰던 것 또한 가능성 있는 말이다. 그렇다고 하여도, 한국교회 전체적인 면에서 주류일 수는 없었다.

더 나아가 휴스톤서울침례교회식 가정교회가 다음 단계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다. 앞에서 고찰해 본 대로, 비성경적, 비역사적, 비정통적 경향이 농후한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지금이야말로 최영기 목사는 자기성찰의 기회로 삼아 가정교회와 자신의 모습을 냉철하게 바라 볼 때가 아닌가 싶다.

3. 끝내는 말: 휴스톤서울침례교회식 가정교회의 탈선과 방황을 끝내야 할 때

신 학자로서 필자는 지금까지 신학의 사명이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저술을 하고, 학술지에 게재할 논문을 작성하고, 신학적 특강을 하고, 강의를 하고, 신학생들을 지도하고 등 어떤 일을 하더라도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대한 깊은 사랑과 애정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감히 자신할 수 있다. 필자가 가정교회 문제를 다루는 이유도 교회를 바르게 세우기 위함이지 파괴하고 해체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스톤서울교회식 가정교회에 대하여 이렇게 예리한 신학적 메스를 가한 이유는 위에서 살펴본 대로 정통신학적 측면에서 그 탈선과 방황의 강도가 예상보다 컸기 때문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이 땅에 세워진 교회는 건축자들이 효용가치가 없다고 판단되어 버렸던 바로 그 돌,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코너스톤이 되어 주심으로 든든한 기초석 위에 건설해 나갈 수 있었다.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은 귀한 말씀을 주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태복음 7:24-27)

위에서 논한 내용들을 통해 현재의 가정교회를 바라본다면 필자의 신학적 판단과 아울러 독자 제위의 신앙적 양심에 따라 객관적으로 그 중심을 관통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리라 사료된다. 이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는 성경적, 역사적, 정통적 반석 위에 흔들리지 않는 구조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래 위에 지은 집, 즉 사상누각이 된다는 말이다.

최은수 교수 ⓒ 크리스찬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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