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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스 박사 "한국 선교의 시작-토마스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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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3-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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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싱톤중앙장로교회(류응렬 목사)는 "생명보다 귀한 사명"라는 주제로 선교부흥회를 4월 26일부터 3일간 열었다. 강사는 류응렬 목사, 이원상 목사, 닥터 프라이스와 테너 휴 프라이데이등이다. 둘째날 저녁 "한국 선교의 시작 - 토마스 선교사"라는 제목으로 프라이스 박사와 테너 프라이데이의 간증과 찬양이 진행됐다.

집회를 시작하며 류응렬 목사는 "1866년 한국땅에 들어와서 젊은 생명을 한국땅을 위해 바쳤던 한 젊은이,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시대가운데 우리의 선교를 돌아보려고 한다. 토마스 선교사가 한국에서 순교했을때 27세의 젊은 청년이었다. 한국강산에 그 청년이 흘린 피로 말미암아 평양에 대부흥운동이 일어났고 이 시대까지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속에 이제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로 변화를 받게 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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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스 박사의 간증과 류응렬 목사의 통역

스티브 프라이스(Steve Price)는 의사이고, 휴 프라이데이(Huw Priday) 성악가로서 웨일즈 하노버에 있는 토마스 선교사의 집에서 가까운 곳에 고향집이 있다. 그들은 토마스 선교사의 삶을 보고 가장 유명했던 자신의 직업을 뒤로 하고 삶을 선교를 위해 보내고 있는 분들이다.

프라이스 박사는 매사추세스 보스톤 골든코넬 신학교 근처에서 의사로 오래동안 일했다. 뉴잉글랜드 지방 2만5천 의사중에 가장 뛰어난 25명중에 들어갔으며, 골든코넬 신학교 대부분의 교수들의 주치의로 모시던 분이었다. 하지만 토마스 선교사의 일대기를 듣고는 한참 일할 나이에 병원문을 닫고 북한선교와 세계선교를 위해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성악가 휴 프라이데이는 오페라 유령에 나오는 주인공으로 오랫동안 자신의 삶을 음악을 위해서 활동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이제는 그의 삶을 오직 복음을 위해서만 하나님을 찬양하는데만 드리겠다고 결단하고 세상의 모든 음악을 끓고 오직 하나님만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었다.

프라이스 박사는 간증과 함께 토마스 선교사 이야기를 전했으며, 이야기 중간중간에 휴 프라이데이가 찬양을 했다. 프라이스 박사는 웨일즈에 있는 토마스 선교사의 사저를 구입했으며 순교지를 방문을 위해 북한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으며, 휴 프라이데이는 한국어로 찬양을 할 정도로 한국과 관계가 많다. 다음은 스티브 프라이스의 간증과 휴 프라이데이의 찬양내용이다.

한국 선교의 시작 - 토마스 선교사

웨일즈에서 왔다. 나는 토마스 선교사의 교회와 집이 있는 곳에서 몇마일 안되는 가까운 거리에서 자랐지만 토마스 선교사의 삶에 대해 아는 바는 없었다. 미국에서 일하다가 영국 웨일즈에 방문했을때 저의 집의 근처에 모르는 한 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교회문으로 들어갔을때 한국지도가 걸린 것을 보았다. 한국인들이 짜놓은 수를 보았고 젊은이들의 사진도 보았다.

성령께서 저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을 알아야 한다. 그의 발자국을 따라가 보라. 성령께 순종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너에게 가르쳐 주겠다." 그것이 바로 제가 알지 못했던 저 극동지방에 있는 한국으로 여행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토마스가 자라났던 집은 이제 제 집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잘 알려지지도 않고 세상사람들에게 유명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하나님앞에 소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을 하게 되면 우리는 나아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데 쓰임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엄청난 가치를 가진 사람이다.

토마스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임했다. 1856년 토마스가 17살일때 웨일즈에 있는 작은 예배당인 하노버 교회에서 첫 설교를 했다. 토마스가 첫번째 한 설교의 본문은 히브리서 13:8절 말씀이었다. 토마스 선교사의 첫번째 설교는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동일하시다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믿는 것이 있다. 토마스 선교사가 전했던 그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소명을 주신다. 토마스가 그 하나님의 소명을 받게 되었을때 중국으로 한국으로 선교사로 떠나게 되었다.

토마스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말씀은 출애굽기 33:13 말씀이었다.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그때 하나님이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토마스도 모세처럼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 내가 나아갈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질문으로 말미암아 토마스는 세상의 정반대로 가게 되었다. 바로 여러분의 나라 은둔의 나라 한국이었다. 우리 휴 선생이 토마스 선교사가 어떻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는지 찬송을 통해 들려 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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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프라이데이(Huw Priday)의 찬양

I Will go

주님 음성을 들을 귀를 내게 주소서
주님을 온전히 따라 걸어갈 두 발을 내게 주소서
상처입은 자를 만질수 있는 두 손을 내게 주소서
또한 온전히 순종할수 있는 믿음을 내게 주소서

주의 온전한 종으로 살아갈 은혜를 내게 주소서
잃어버린 자를 향한 긍휼의 마음을 내게 주소서
주님의 영광을 위한 열정을 내게 주소서
십자가를 향한 열정 또한 내게 주소서

쉽지 않은 길이라도 주를 위해 가겠습니다
편안하고 보장된 미래도 다 버리겠습니다
주님 계신 본향 길 바라보며 가겠습니다
가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젊은 토마스가 혼자가는 것이 좋게 보이지 않으신 것 같다. 토마스가 런던대학교를 23살에 졸업하고 잉글랜드 앙글리라는 도시의 작은 기독교 학교에서 교사로 있을때 캔저 출신의 캐럴라인 카프리라는 자매를 만나게 되었다. 캐럴라인의 아버지는 굉장한 부자였다. 그러나 토마스와 캐롤라인의 사랑은 에수 그리스도안에 뿌리를 내린 사랑이었다. 그들은 같이 하나님을 향한 열망도 있었고 서로를 향하는 사랑도 있었다. 둘은 영국에 있는 회중교회에서 결혼했다. 그들은 신앙의 열정과 함께 기대감이 부풀어서 폴메이스라는 배를 타고 극동을 향해 떠나게 되었다.

4개월후에 상해에 도착했다. 토마스는 언어를 빨리 배우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중국말, 북경어, 방언까지도 배우게 되었다. 토마스는 1863년 상해에 있는 선교센터에 정착을 하게되었다. 토마스의 사랑했던 아내가 유산을 하고 아내도 죽게되었다. 캐롤라인이 남겼던 마지막 유언이 기록에 남아있다. "나는 온 맘을 다해 내 주님을 사랑합니다." 토마스는 실망감에 젖었고 마음이 피폐해졌으며 그는 고통과 슬픔속에 쌓였다. 토마스는 선교를 떠나 세관원으로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는 결코 그를 떠난적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선교를 떠난 토마스를 만나주셨고, 그의 마음을 치유하기 시작하신다. 하나님이 젊은 토마스에게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고 영원하시다." 결코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은 상처입은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을 치유하신다고 말씀하셨다. 휴가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겠다.

Healer of My Heart

빛되신 주, 어둠을 몰아내시고
순전한 기쁨 채우시며
날 만지소서
은혜의 주, 낮은 곳으로 임하사
자녀들 기도들으시며, 날 받으소서
내 맘의 치유자, 내 영혼의 사랑
땅과 하늘, 별들을 만드신 창조자
오셔서 날 완전케
세상의 구세주, 목소리로 주만 찬양해
내 맘의 치유자, 내 영혼의 사랑


토마스 선교사는 한국에서 성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았다. 스코트랜드 성경공회에 있는 친구의 도움으로 한글성경을 가지고 은둔의 나라 한국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한다. 1865년 그는 위험천만한 항해를 하게된다. 하나님께 의존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시함을 바라보면서, 한국에 도착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을 막을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토마스 선교사의 행동을 두고 표현할수 있는 것은 무모함이라는 단어 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바보라고 말할 것이다. 때로는 토마스는 바보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토마스가 똑똑한 바보라고 말할수 있는 것은 적당하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무모한 사람도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이 찬양을 기억하시는가.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하신 주
날 오라 하신다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골고다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토마스 선교사는 1865년에 조선을 가기위해 중국을 떠났다. 그러나 배가 좌초됨으로 그의 항해는 실패하게 된다. 그는 자비를 들어서 배까지 빌렸다. 결국에는 조선땅 그리고 만주를 지나 들어가려고 했다. 산적들의 추격을 받기도 했고 그러다가 사랑이 많은 이슬람 교도들에게 구출되고 베이징으로 다시 돌아온다.

토마스 선교사는 다시 그의 선교를 수행하기 시작한다. 성경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그는 새로운 언어 한글을 익히게 된다. 토마스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 하늘의 언어를 모든 사람에게 나누었다. 모든 하나님의 피조물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 우리 가슴에 메아리치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었다. 1904년 웨일즈에 부흥이 일어났을때 부르던 찬양이 있다.

Here is Love vast as the ocean

생명의 주 나를 위해 보배 피를 쏟을때
바다같은 그의 사랑 물결치며 넘치네
그 사랑 누가 잊으리 그 찬양 누가 멈추리
그의 사랑 그의 자비 영원히 기억되리


토마스가 한국에 들어가려는 계획이 좌초됨에도 토마스는 다시 들어갈 계획을 세운다. 1866년 베이징을 떠나서 다시한번 한국에 들어가기 위해 미국배 제너럴 셔먼호에 승선한다. 토마스는 스스로 감수해야 할 위험이 무엇인지 잘알고 있었다. 당시 한국의 지도자였던 대원군은 프랑스 신부 12명중 9명을 참수시켰다. 당시 캐톨릭을 믿었던 수천명의 사람들을 죽였던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토마스 선교사는 한국인과 함께 다시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기로 결단했다. 토마스는 배가 멈추는 곳 마다 성경을 나누어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 선상의 방에 사람들을 초대하여 복음을 나누기도 했다. 토마스 선교사의 가슴에 늘 요동치는 하나의 주제가 있었다. 에이 제이 골든이 쓴 찬양에 잘 나타나 있다.

My Jesus I love Thee

내 주되신 주를 참사랑하고
곧 그에게 죄를 다 고하리라
큰 은혜를 주신 내 예수시니
이전 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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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선교사

토마스 선교사는 살아서 하나님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죽음의 순간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했다. 셔먼호가 조선인의 공격을 받게 되었을때 선원들은 공황상태에 들어갔고 대동강 깊지 않은 물가에 배가 좌초됐다. 저는 북한을 방문하여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했던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영광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대동강 물에 손가락을 대면서 뇌리속에는 토마스 선교사가 흘렸던 피뿐이었다. 토마스는 그곳에서 순교하고, 첫번째 순교자 스데반 집사가 한 것 처럼 그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했다.

그런데 이것이 이야기의 끝일까요. 평양감사 박규수나 대원군은 그들의 죽음으로 조선은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님께게서 역사를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헛된 메아리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토마스 선교사가 나누어준 성경책을 가지고 평양의 동쪽에 있던 집안에 벽지를 바른 사람이 있었다. 토마스를 죽였던 사람이 바른 벽지였다.

그 집은 최치량이라는 사람이 구입했는데 토마스가 순교할때 12살의 나이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이 개신교가 한국땅에 심겨지기 시작한다.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한 이후 사무엘 모펫, 블레어, 존 로스등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 왔다. 한석진, 최지량, 길선주, 이기풍등 하나님 사람들도 나왔다.

1907년 성령님께서 평양을 거룩한 불로 태우기 시작하셨다. 놀라운 일이다. 그전에 웨일즈에서도 거룩한 부흥이 일어났다. 하나님은 아주 평범한 광부를 사용하셨다. 성령님의 역할로 말미암아 그를 통해 부흥운동을 일으켰고 이것이 평양까지 전달된 것이다. 블레어라는 미국 선교사는 평양의 부흥운동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거센 풍랑이나 거센 바람속에 계시는 것은 아니었다. 조그마한 미세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분도 아니었다. 눈물흘리는 그 사건을 통해 성령님께서 평양에 찾아오셨다. 기도가 계속되었을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죄를 회개하는 눈물이 터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저도 과연 희망이 있을까요. 하나님 저의 죄가 용서를 받을수가 있을까요. 수백명의 사람들이 하나님앞에 기도하기 시작했다. 죄를 자복했고 눈물로 기도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기 시작한다. 침묵을 깨고 거대한 찬송이 울리기 시작했다."

예수의 피박에 없네
다시 성케 하기도
예수의 피박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박에 없네


모든 것이 다 잊혀져 갔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들의 조롱도 끝이 났다. 법의 구속도 다 끝이 났다. 만약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시기만 하면 심지어 죽음도 별문제같이 보이지 않았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으로 나오게 되었다.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깨끗함을 입게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사람들이 변화되자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열망이 생겨났다.

1905년 토마스 선교사의 희생이 다시금 기억되기 시작했다. 사무엘 모펫 선교사와 오문환 목사가 토마스 선교사를 기리기 위해 3가지 사업을 진행했다. 첫째는 토마스 선교사의 일대기를 쓰는 것이다. 둘째는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했던 자리에 기념교회를 세우는 일이었다. 셋째는 섬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배를 만들기도 했다. 복음사역을 위해 기금운동도 했다.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한 장소에 1932년에 기념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스코트랜드 성경공회에서 제공한 교회 머릿돌에 쓰여진 글이다. "순교자의 피가 기독교의 씨앗이다.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아니하면 결코 열매를 맺을수가 없나니."

토마스 선교사는 성령님이 하시는 음성을 듣고 순종하기를 원했다. 여러분들도 그 성령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는가. 우리들에게는 가진 재능이 많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응답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를 찬양으로 부르며 영광돌리겠다.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름 거룩하사
주님나라 임하시고 뜻이 이루어지이다
일용할 양식 주시고 우리들의 죄를 다 용서하옵시고
또 시험에 들게 마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대개 주의 나라 주의 권세 주의 영광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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