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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교회 30주년, 원칙에 흔들림이 없는 김정국 목사 파워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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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 2005-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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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30주년을 맞아 뉴욕한민교회가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 2005년 10월 1일(토)에는 바자회가 열렸으며 무료의료검진, 이민법설명회, 사물놀이 공연, 음식백화점 등 다양한 내용으로 진행됐다. 10월 7일부터 9일까지는 자매교회인 경주제일교회 정영택 목사를 초청해 "은혜와 소명을 이루는 삶"이라는 주제로 부흥회를 열며, 9일에는 교회건축 기공예배를 드린다.

아멘넷은 한민교회 창립 30주년을 맞아 담임목사인 김정국 목사를 인터뷰하고 그의 목회 삶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신학교 1년 선배인 박희소 목사의 초청으로 미국에 오게 된 김정국 목사는 "타협을 잘 못하는 강직한 성격"이라고 겸손하게 자신을 표현 했다. 김 목사는 성도들에게 "교회에 주인의식을 가지며,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천국 시민권자로서의 기쁨으로 살라"고 강조 했으며, 후배목사들에게 "알곡이 가득찬 교회를 이루어야 한다. 부모의 눈으로 성도를 보라"고 권면했다. 아래는 인터뷰 내용이다.

뉴욕한민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목회철학은?

교회를 개척하는 사람이나 세워진 교회를 섬기는 사람이나 모두 마태복음 16장 16절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한 "반석'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이 교회를 운영하면 문제가 생긴다.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되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선지자, 제사장, 왕의 역할을 동시에 다 하신 분이다.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 이것을 해나가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교회다운 교회가 아니다. 어느 하나만 치중해도 마찬가지이다. 균형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에는 애클레시어교회(모이는 교회)와 디아스포라교회(흩어지는 교회)가 있다. 내가 느끼는 것은 잘 모이는 것은 쉬워도 사명으로 흩어지는 것은 어렵다.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해야 한다. 흩어지는 교회는 사회의 정의를 강조하게 되고 그런 교단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는다. 두 가지를 같이 잘 조화하여야 한다.

본인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목사가 되려고 작정을 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이다. 겨울방학때 출석하던 교회에서 부흥회를 열고 집회와 성경공부를 했는데 그때 강의를 들은 로마서 강해에 매료가 됐다. 알다시피 로마서는 "11장까지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 그 이후는 구원 받았으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내용이다. 구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때서야 알았다.

대학에서는 가장 신학과 유사한 공부를 하기 위해 계명대학교 철학과를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1년뒤 장로신학대학에 들어갔다. 그때 경동노회에 선교사로 있던 부례문 선교사가 미국교회에서 제공한 장학금을 내가 탈 수 있도록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그리고 1969년 목사가 되었다.

어떻게 미국에 오시게 되었습니까?

용산교회 부목사때 시카고에 있는 교회에서 청빙요청이 왔다. 하지만 바쁜 일정 때문에 첫 번째 미국에 갈 기회를 놓쳤다. 그 후 보광중앙교회를 개척했으며 1902년 창립된 고향소재 경주 제일교회에서 담임목사로 목회를 했다. 담임목사로 있으면서 계명대학교와 영남신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그때 신학교 1년 선배인 박희소 목사(뉴욕동부교회 원로목사)가 한민교회의 임시당회장으로 있으면서 나를 한민교회 후임목사로 뉴욕으로 오라고 했다. 하지만 당시 경주제일교회는 건축을 준비 중이라서 못 간다고 했다. 하지만 건축에 필요한 2년을 기다려 주었다. 한민교회는 당시 고용수 목사(한국 장신대 총장 역임)가 설교목사로 있었다. 그 후 82년 1월 한민교회로 오게 되었다.

나는 한민교회에 올 때 비자를 받기 전에는 담임하던 교회에 사표를 내지 말라고 충고를 들었으나 사표를 냈다. 목사를 위해 교회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당회에서 말렸지만 이산가족으로 만주에 있는 동생을 만나고 공부를 하기위해 미국으로 간다고 설득했다. 미국에 온 후 중국에 있는 동생을 만났다.

한국에서의 목회에 비교하여 한인이민교회 목회의 다른 점은?

미국에 오니 많은 면이 한국과 같지만 어떤 면은 한국과 다르다. 당시에는 이민역사가 깊지 않고 교인들의 생활이 안정이 되지 않아서 인지 교회에 대한 주인의식이 희박한 것 같았다. 또 직분을 한인회 간부같이 명예로 생각했다. 신앙적으로 직분을 받아야 하는데 나이가 되었는데 직분을 달라고 불평하는 것도 문제였다. 목사를 성직자로 대우하기보다는 직장인으로 대우했다. 하지만 이민사회가 안정하게 됨에 따라 이제는 직분관과 교회관이 긍정적으로 많이 달라졌다.

목회의 어려운 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셨습니까?

교인들이 믿음이 자라 성숙한 믿음으로 자라가는 것을 보면 가장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교회 직분관과 교회관이 제대로 훈련 안된 상태에서 교회에 오래있었다고 선배로 우기는 것은 문제이다. 그러다가 교인들의 동정표로 다음에 장로가 되면 "설익은 직분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교회를 사회처럼 생각하고 권리와 주권을 주장하고 목회를 간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것들이 목회의 어려운 점이다.

후배목사에게 목회선배로서 한 말씀?

후배목사들은 목회를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라. 목회는 어렵고 죽을 자세로 덤벼야 한다. 교인들은 각층들이 다 모이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목회자는 절대로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바꾸지도 말고 초지일관 일관성을 가지고 목회를 해야 한다. 목회내용인 설교, 행정, 심방에서 교인들을 차별대우 하지마라. 사실 목사도 사람인데 그것이 어려울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겨내고 인내해야 한다. 절대로 사람을 차별대우 하지 마라! 부모가 자식을 보는 눈으로 교인을 다루어야 한다. 부모의 마음은 모자라는 자식에게 마음이 더 가게 된다. 사사로움 보다는 공평무사가 중요하다.

본인이 어떤 성격이라 생각하십니까?

자주 이렇게 처신하면 안된다는 계산이 나오지만 그래도 할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강직하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타협을 못한다"라는 단점이다. 성경을 읽어보면 사람은 죄인이며 많은 실수를 하게 되는데 실수후 처리를 잘해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실수 했다면 빠르고 철저하게 사과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은 약해서 또는 몰라서 죄를 지을 수가 있다. 그때 빠르고 철저한 회개가 없으면 죄가 영혼을 약하게 하고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다. 사람처럼 죄를 잊어버리는 하나님이 아닌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어떤 후임목사가 오셨으면 합니까? 후임목사의 선출방법은?

후임목사는 나는 잘 못했지만 정말 교회를 잘 성장시키는 목회자였으면 한다. 교회를 질과 양적으로 성장시키기를 바란다. 후임목사는 교인이 좋아하는 것만 따라 강단을 세속화하고 비성경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교인의 귀에 거슬리더라도 알곡이 가득찬 교회를 이루기를 바란다. 숫자는 늘어도 알곡이 줄어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나님의 속성은 "공의와 사랑"이다. 많은 교인들이 사랑만 앞세워 기도한다. 그렇게 신앙의 본질을 흐려 쭉정이가 되어서는 안된다. 전임목사가 전적인 권한을 가지고 후임목사를 초청하는 것은 잘못이다. 교회와 당회에 맡겨야한다. 만약 당회에서 목사에게 부탁하면 추천정도는 할 수 있다.

교회건축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요?

오는 10월 9일이 교회의 기공식이다. 그동안 지역주민이 반대하고 법적인 문제가 있어 시간이 많이 걸렸다. 마지막으로 설계를 가지고 수정을 하는 중이다. 30주년을 맞아 헌당식을 목표로 했는데 도로선에 관련한 법적인 문제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 기공예배를 먼저 드리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입구를 수정하는 작업을 먼저 시작하고 법적인 문제가 완전 해결되는 내년 봄에 본격적인 건축에 들어가게 된다.

교회건축을 위한 재정은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루즈벨트 선상의 교회소유 건물에서 렌트가 매월 3만 6천불이 들어오고 있으며, 현 교회부지도 있어 교회건축을 위한 융자에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교회건축에는 5만 3천 스퀘어에 900만불의 건축비가 들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별한 것은 노인들에게 온돌방 2개를 제공하고, 지하에 개인기도실 4개를 갖춘다. 그리고 계단식 성가대 연습실과 독립 EM 예배실이 특징이다.

이민한인교회 교인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무엇보다 구원이라는 근본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예수를 믿는 근본목적은 "구원"이다. 영혼과 육신이 구원되는 전원구원이다. 영적으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신앙은 사상누각이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천국시민권자로서 기쁨으로 살아라. 그러면 이민생활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구원을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관심으로 가지기를 바란다.

후배 목회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말씀?

하나님이 바울사도에게 "네가 사람에게 좋게하랴? 하나님에게 좋게하랴?"라고 말씀 하셨다. 사람을 무시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각각 다른 교인들의 비유에 맞추려고 하다 탈진하지 말고 오직 한분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려고 하면 목회가 쉬워진다.

한민교회의 역사

한민교회는 김권석 목사에 의해 1975년 창립후 30년의 역사만큼 많은 사역자들이 거쳐갔다. 뉴욕교계의 역사의 한 면으로 소개한다.

1975년 1월 김권석목사등 10명 성도들 뉴욕한민교회 창립
1975년 3월 박희소, 안창의목사 협동목사
1975년 11월 박희소목사 뉴욕동부교회 개척
1976년 3월 안창의목사 퀸즈중앙장로교회 개척
1979년 1월 김권석목사 뉴욕한성교회 개척
1979년 2월 박희소목사 임시당회장
1979년 2월 고용수목사 2대 담임목사
1981년 5월 장윤철장로등 뉴욕영락교회 개척
1982년 1월 김정국목사 3대 담임목사 취임
1982년 6월 임수식장로 낙원장로교회 담임교역자로 전임
1982년 12월 이창수장로, 장창혁전도사 뉴욕명성교회 개척
1988년 1월 이승재부목사 뉴욕은혜교회 담임목사로 전임
1991년 1월 이학성목사 뉴욕새예루살렘교회 개척
1994년 11월 오영관전도사 뉴욕시온장로교회 담임교역자로 전임
1996년 10월 황병걸전도사 목사임직후 양무리교회 담임목사로 전임
1997년 11월 임종화목사 뉴저지충현교회 담임목사로 전임
2000년 2월 박규완목사 커네티컷 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로 전임
2001년 11월 김유태목사 뉴저지 새동산교회 담임목사로 전임
(출처 한민교회 교회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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