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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의 재물관 ② 노진산목사 "예수님과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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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2-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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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에게 돈이 있을때나 없을때나 유혹은 언제나 있다. 그리고 삶에 현장에서 가장 많이 고민하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고 쓰러지는 것이 돈의 문제이다. 아멘넷은 몇차례 성경적인 돈의 사용에 관련된 설교를 정리하여 소개할 예정이다. 그 첫 순서로 노진산 목사(믿음으로사는교회)가 마가복음 10장 17-31절 부자 청년과 예수님과의 대화를 본문으로 한 "예수님과 돈"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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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산 목사(믿음으로사는교회)

오늘은 예수님의 사역중에 돈에 대한 토론이다. 돈에 대해 우리는 할 말이 많다. 저도 어릴때부터 계속 듣던 이야기가 있다. "돈이 왠수이다" 또는 "돈만 있었으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실 돈만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돈에 대해 생각할때 돈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 귀하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돈이 돈인 것으로 생각할수 있다면 얼마나 건전하고 좋을까 라는 생각해 본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동시에 복음중심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크리스찬들이 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를 배우게 된다. 냉소함이 아니라 건전하고 복음적인 생각으로 돈을 그냥 돈으로 볼 수 있는 용기와 자유를 가져야 한다. 저도 그런 자유와 용기를 가지고 싶다. 냉소적인 것이 아니라 건전하게 복음중심적으로 돈은 단지 돈이다고 생각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돈이 더 큰 것으로 생각할때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젊은 부자 청년이 가난한 청년인 예수님에게 찾아와 질문하는 대화의 모습이 본문의 말씀이다. 마태복음에도 그렇고 다른 성경에서도 알수 있는 것 처럼 젊은 부자 청년이 가난한 떠돌이 설교자 청년에게 달려오는 모습이다. 그런 대조함을 마가와 마태가 보기를 원했다. 부자 청년이 가난한 청년에게 와서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고 천국을 갈수 있겠냐는 질문을 하면서 예수님과 대화를 풀어나간다. 그것을 통해 우리들이 돈에 대해 배우기를 원하는 마가의 의도를 보아야 한다.

세가지만 생각해보자. 1. 젊은 부자의 질문 2. 젊은 부자의 불행 3. 진정한 부자의 은혜에 대해 생각해 보자.

1. 젊은 부자의 질문

마가가 우리로 하여금 주목하기를 바란것이 있었다. 마가는 젊은 부자가 달려와서 떠돌이 설교자에게 꿇어 앉았다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마가가 우리로 하여금 보기를 원했던 것은 젊은 부자의 겸손함이다. 지금 사회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부유한 분들이면 사실 떠돌아다니며 전도하는 청년에게 무릎을 꿇기가 힘들다. 이러한 행동을 마가는 관찰하고 우리도 보기를 원했다.

젊은 부자는 예수님에게 겸손하게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을 한다. 젊은 부자의 태도뿐만 아니라 예수님에게 구하는 것도 고상한 것이고 중요한 것이다. 그는 영생을 얻는 길을 찾기위해 예수님에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때 오히려 예수님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라고 반문하신다. 젊은 부자가 선한 선생이라며 겸손하게 질문한것에 대해 까칠하게 반응하시는 예수님을 본다. 왜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부자 청년이 뛰어와 무릎을 꿇고 겸손하게 질문을 했는데 예수님의 까칠한 반응을 듣고 모두가 당황했을 것이다. 존경을 표시한 부자 청년을 칭찬하기 보다는 오히려 어색한 질문을 하신다. 그를 세워주기 보다는 질문의 동기와 의도를 의심하는 것 같은 기분 나쁜 뉘앙스로 예수님이 질문을 하신다. 제가 이 상황에 있었더라도 어색했을것이다. 제가 제자중의 하나였다면 부드럽게 넘어가면 되는데 주님이 왜 오늘 저러실까 라고 생각했을수도 있다.

예수님은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면 말씀하셨는데 젊은 부자에게는 이상한 주문을 하시는 것을 본다. 예수님은 평소에 계속 종교적인 순종이나 도덕적인 착한 행위로 구원을 받을수 없음을 강조하셨다. 그것이 기독교의 핵심이고 복음의 핵심이다. 계명을 지켜서 종교적인 생활을 하고, 착한 행실과 선한 일을 함으로 도덕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기에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기독교의 가르침이 아니다. 예수님은 계속 그렇게 가르키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계명을 말씀하면서 그것을 지켜야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신다. 이어 예수님이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신 것은 1계명에 해당되는 하나님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말씀이다. 왜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이 청년에게는 너의 죄를 위해 내가 희생물이 되었다는 말씀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예수님이 아셨다. 왜 그럴까.

우리가 알수 없는 것을 예수님이 보셨다. 예수님은 이 사람의 마음을 보시고 젊은 청년은 자기를 죄인으로 보지않음을 발견하셨다. 구원의 Good 뉴스가 있기위해 죄의 Bad 뉴스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죄의 Bad 뉴스를 이야기 하기전에는 구원의 Good 뉴스를 말할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청년에게 질문하시는 것이다. 마가가 우리가 중요한 포인트를 알기를 원했다.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의도를 청년의 질문에서 찾을수가 있다.

젊은 청년은 예수님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은 계속 구원은 선물이고 겸손으로 받는 것으로 가르쳤지만, 이 젊은이에게는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을수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리고 젊은이도 예수님의 가르침과 별로 상관없이 자기가 무엇을 해야지만 구원을 얻을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예수님에게 나왔다.

우리도 같이 실수할때가 있다. 교회를 다니든 안다니든, 교회를 다닌지 오래되었든 그렇지 않든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할때가 있다. 선한일을 하면 천국에 들어갈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을 해치지 않고 착하게 살면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실것이라고 믿는것 같다. 착하게 살면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실것이라고 우리도 그런 생각을 가끔 한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기독교에 대해 잘아는 사람도 착하게만 살면 하나님이 알아주시겠지 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등 여러 계명을 말씀하신다. 그러자 부자 청년은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라고 대답한다. 부자 청년은 계명을 다 지켰는데 무엇이 더 부족하냐고 묻는다. 예수님은 한가지가 더 부족하다고 대답하시며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첫번재 계명을 강조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외에 다른 신이 없다면 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재물을 없애라고 말씀하신다. 이 청년에게는 재물이 문제였다. 하나님을 얻기 원하면 내가 가진 재물을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2. 젊은 부자의 불행

젊은 부자의 불행이 이제부터 시작된다. 이 도전적인 말씀에 청년이 도저히 감당할수가 없었다. 본문에서는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고 갔다고 나온다. 젊은 부자는 진정 구원을 원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를 사랑하셨다. 순수한 동기로 왔을수도 있을 것 같다. 구원을 얻으려 예수님께 왔는데 예수님이 말씀하는 것을 듣고 근심하고 슬퍼했다. 구원을 원했지만 동시에 재물을 원했다. 그래서 "두마음을 품지말고 한 하나님을 섬기라"는 예수님의 초청의 말씀에 응답할수 없었다.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물론 젊은 부자가 "하나님, 재물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재물을 가지면 많은 것을 할수 있잖아요. 저를 선택하시면 예수님을 위해 얼마나 할 수 있는 것이 많을까요"라고 생각했을수도 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하신다. 외적인 율법과 규례를 지킬수 있었는데 자기가 가진 재산때문에 마음이 나누어져 있는 청년의 모습을 본다.

젊은 부자에게는 돈과 하나님이 동등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의 보화보다는 아직 세상의 재물이 좋아서 예수님을 따를수 없었다. 이 젊은 부자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세상의 것을 버릴수 있는지 묻고 계신다. 우리가 무엇을 버려야 할것인가. 주님을 얻기위해서 무엇을 버려야 할것인가. 아직도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씨름해야 한다.

젊은 부자가 돌아설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말문이 막혔다. 제자들이 놀랐다고 성경은 표현한다. 제자들은 놀라 아무말도 못한다.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신다.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이 성경귀절에는 많은 해석이 있지만 예수님의 의도는 단순하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제자들이 다시 매우 놀랐다고 나온다.

제자들이 놀라 서로 말하기를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했다. 왜 제자들이 놀라고 이런 질문을 했는지 그리고 예수님의 의도를 이해하려면 시대적인 배경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수 없다고 하지 않으시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하셨다. 제자들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물었는데 더 합당한 질문은 "왜 중산층과 가난한 사람들만 천국에 들어갑니까" 라는 것이 더 어울리는 질문이다. 왜 부자만 천국에 못가는가. 중산층과 가난한 사람은 어떻게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인가.

1세기 유대인의 사상을 이해한다면 왜 이 질문이 필요했고 제자들의 입에서 그런 질문이 나왔는지 알 수 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가난한 사람은 천국에 가고 부자는 천국에 못간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솔로몬 같은 부자들은 천국에 갈수 없다는 말인가. 왜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했느냐 하면 당시 유대인들은 부자는 당연히 천국에 간다고 생각했다. 돈으로 구원을 사서 천국에 간다는 것이 아니라, 재물이 축복의 사인이기에 부자는 당연히 천국에 간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재물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생각했기에 그들의 세상관 재물관 구원관에서는 부자는 당연히 천국을 간다고 생각했다.

1세기 유대인 문화에서 율법을 키지고 재물이 있다면 구원의 첫번째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청년은 율법도 지키고 겸손하고 엄청난 부자였다. 당연히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렇게 반응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사상의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보는 재물에 대한 견해를 보여준다.

그래서 제자들의 질문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부자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다. 이렇게 축복을 받은 사람도 구원을 못받으면 우리는 소망이 없구나 라고 생각한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누구가 시험을 받을때가 있다. 사람은 자신의 재물과 개인의 힘에 의지하고 싶은 유혹이 항상 있다. 저도 지갑에 현금이 어느 정도 있으면 든든하다. 그것은 당연하다.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영원한 그리고 훨씬 더 깊숙한 정체성과 삶의 의미와 죽음과 영혼의 의미에 연결을 시키기때문에 문제이다. 복음은 한마음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다. 그분만이 우리의 기쁨이고 인생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복음이다.

3. 진정한 부자의 은혜

아까 주님한분만으로 만족한다고 찬양했다. 이 찬양을 할때마다 부담이 된다. 그렇지 않을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해 하면 저는 훨씬 더 자유롭게 찬양할수 있다. 주님 한 분으로 그리고 다른 것들도 같이 하면 좋은데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것이 복음이다. 대체 그 분이 어떤 분이시길래 누구이시리길래 한분만 있으면 만족하다고 고백할수 있을까. 그 분만이 우리의 기쁨이고 만족이고 모든 인생의 끝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복음이고 그것을 고백하는 것이 예배이다.

제자들은 너무 놀랐다. 자기들의 생각한 세상관 가치관 재물관이 완전히 무너졌다. 예수님은 놀란 제자들에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라고 위로하신다. 예수님이 여기서 주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인가. 우리가 구원을 얻고 천국에 가는 것은 우리의 열심과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씀하신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하고 아무리 열심히 살려고 하더라도 아무리 도덕과 윤리적으로 깨끗하게 살려고 해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돈으로도 할 수 없고 모든 계명을 지킨 사람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앞에 나오고 올바로 설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이다. 이 세상의 것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다. 우리의 노력과 힘 그리고 우리의 자랑하는 것과 내세우는 것은 하나님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없다는 자유함을 우리에게 주신다. 모든 것을 주님에게 드릴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진정한 부자인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된다. 리디머교회 팀켈러 목사에게 배운 인사이트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는데 나도 큰 은혜를 받았다. 예수님은 젊은 부자를 사랑했다고 본문에 나온다. 하지만 젊은 부자는 슬픈기색을 띄고 갔다고 했다. 만약 예수님이 돈에 대한 이야기만 했다면 우리도 젊은 부자와 같이 반응을 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돈을 다 바쳐라"라고 말씀하신다면, 교회에 가면 돈이야기를 들으면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저도 스트레스가 쌓인다. 예수님이 "돈을 빨리내라, 교회에 헌금하라. 그러면 더 많이 받을 것이다"라는 돈이야기만 했으면 우리도 근심하고 갔을지도 모른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중요한 말씀이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부유하셨던 그 분이 우리를 위해 가난해졌다고 말씀한다. 예수님이 부자청년과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 "나도 부유한 사람이었다.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부와 직위와 안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상상도 못할 그 많은 것을 다 잃어버렸다. 너를 얻기 위해서. 너를 가지기 위해 우주적인 재물을 버리고 말로 표현할수 없는 고통과 가난을 경험해야 했다. 내가 너를 위해 그렇게 했다면 너는 너의 재물을 다른 사람에 주고 나를 따르지 못하겠느냐."

진정한 부자였던 예수님이 모든것을 다 버리셨다. 부자청년을 보는 것 보다 더 부자청년인 예수님을 보아야 한다. 부자청년은 버리지 못하고 아직가지 그것을 붙잡았지만 진정한 부자청년인 예수님은 우주적인 모든것을 버리고 여러분을 위해 이땅에 오셨다.

사도바울은 그 사실을 알았기에 그렇게 말할수 있었다. 가장 부자였던 예수님이 가장 가난해졌다. 그래서 젊은 청년과 대조를 보여준다. 우리가 진정한 부자로 예수님을 볼수 있다면 우리의 재물에 대해 그렇게까지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왜 아직까지 세상의 재물을 놓기가 어렵냐 하면 예수님을 더 분명하게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럴때마다 예수님을 보아야 한다.

그러면 어떤 예수님을 보아야 할까요. 진정한 부를 가진 부자가 모든것을 버리고 나를 위하여 벗은 몸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그 모습을 보아야만 돈이 그냥 돈으로 보인다. 돈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돈에 얶매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진 돈으로 인해 우리의 정체성이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돈이 많이 있으면 우월감이 생기고 없으면 열등감이 생기는 그런 것으로 인해 정체성이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돈은 돈일뿐이다.

어떻게 하면 그럴게 될수 있을까. 저는 오늘도 진정한 부자인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그 분은 손을 내밀고 이렇게 자신을 소개한다. "나는 부자인데 너희를 얻기위해 다 버렸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영원한 부임을 알고 그 것이 나의 재산이고 모든것임을 알아야 한다. 주님한분만으로 행복하다는 노래하는 척으로 하는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우러나 눈물로 흘릴수 있을 정도로 주님을 바라볼때 그러한 고백이 나온다.

더 이상 돈은 우리의 안정이나 힘이 아니며 우리의 정체성도 아니다. 돈은 그냥 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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