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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윤리를 무력화시키는 다섯 가지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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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21-08-1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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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험에 따르면 전체 신앙의 탑을 무너뜨릴 가능성이 가장 큰 잠재력을 가진 주제는 바로 성경적 성 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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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ason Leung on Unsplash

 

한주도 빠지지 않고 새로운 CCM 스타, 전직 기독교 유명인사 또는 기독교 대학 졸업생이 기독교에 대한 그들의 “진화하는” 믿음, 즉 신앙의 “해체(deconstruction)” 여정을 발표하는 거 같다. 즉, 그 과정이 그들로 하여금 어떻게 신앙 교리를 다시 해석하도록 했는지, 또는 아예 신앙을 포기하도록 했는지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여정 중 일부는 사려 깊고 궁극적으로 건설적인 고민으로 이어져 더욱 견고하고 정통적인 신앙을 갖게 하기도 한다. 동시에 또 어떤 것은 냉소적이고 반동적이며 결과적으로 탈회심(deconversion)을 초래한다. 다양한 “이슈”가 이러한 해체 여정의 촉매제가 되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전체 신앙의 탑을 무너뜨릴 가능성이 가장 큰 잠재력을 가진 주제는 바로 성경적 성 윤리이다. 

 

현대 서구 기독교의 풍경에서 정통 신앙에서 멀어지는 대부분의 길은 “LGBTQ+ 옹호자”라고 불리는,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인기를 얻고 있는 정류장을 통과하게 된다. 이건 단순한 경로 변경을 위한 정류장이 아니다. 여기서 멈추고 앞으로 가야 할 전체 지도를 재구성한다. 우리가 성과 정체성에 대해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거나 의문을 제기한다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성경의 권위에 대한 의심과 흔들리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점점 더 많은 그리스도인, 심지어 성경에 깊이 빠져 있고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자란 사람조차도 이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불안한 기초

 

모든 길이 결국 성 윤리 라인으로 이어진다 해도, 모두가 다 같은 곳에서 시작되는 건 아니다. 처음에는 순수하고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그러나 결국에는 타협하도록 만드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기독교가 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미묘한 형태를 고려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성 윤리 문제 때문에 생각을 바꾼 대부분의 해체적 기독교인은 지금부터 소개하는 불안정한 토대 중 하나(또는 그 이상)를 신앙 배경으로 가지고 있다. 

 

1. 소비주의(Consumeristic)

 

아마도 오늘날 기독교에 대한 가장 널리 퍼진 왜곡(최소한 서구 문화에서는)은 소비주의 경향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독교가 나한테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믿음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내 체형에 완벽하게 맞는 청바지를 찾는 것처럼 신자가 “내게 완벽한 교회”를 찾아 쇼핑하는 신앙이다. 그리고 소비주의의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믿음은 표현적 개인주의의 가정에 뿌리를 두고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편안함을 지향한다. 내게 도움을 주고 손해를 끼치지 않는 한, 믿음은 중요하다. 무엇보다 이익은 크지만 비용이 별로 안 드는 게 중요하다. 나의 자율성을 방해하지 않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나를 표현하고 싶은 ‘진정한 나’에 한계를 두지 않는 한, 믿음은 그럴 듯한 것이다. 이런 식의 신앙은 논쟁이 실종된 믿음, 반문화적이지 않은 기독교 관습, 그리고 교회 출석이 사회적 지위에 이득(또는 중립)이 되는 상황에서 번성한다. 소비주의 신앙은 타협하는 신앙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2. 실용주의(Pragmatic)

 

실용적인 경향은 좋은 동기에서 비롯된다. 가능한 한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자는 것이다. 오늘날 구도자 중심 운동, 대형 교회, 신흥 교회, 힙스터 기독교, 또는 기타 다양한 선교적 또는 교회 개척 전략을 낳은 믿음의 유형이기도 하다. 느낌과 여론을 중시하고, 또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모이는 것”과 같이 고도로 조정된 이런 외향 지향적이고 홍보 지향적인 믿음은 좋은 의도에서 시작하지만 종종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3. 정치적(Political)

 

정치적 소속과 신학적 믿음이 합쳐질 때, 후자는 필연적으로 전자에 의해 형성되고 그 하인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바로 이런 사실이 기독교인으로 하여금 정치적인 이유로(정당 교체 또는 기존 정당 내 노선 변경) 어떤 문제에 대해 “기존 신앙적 입장을 바꾸게” 하고, 또는 정치적 목적에 투신하기 위해 성경의 가르침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하는 것이다. 

 

4. 감정적(Emotionalistic)

 

건강한 기독교에서 감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감정적인 경우에 믿음은 흔들릴 수 있다. 마음을 감동시키는 예배, 감동적인 설교, 영적 황홀경이 주는 “뿅 가는(mountaintop)” 느낌 등, 오로지 체험에만 중점을 두는 신앙이다. 이런 신앙은 종종 강렬함과 열정으로 평가된다. “교회에 가도 더 이상 느낌이 없어”라는 경우거나 그래서 교회가 지루해지기 시작한다면, 문제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좋은 느낌”이 계속될 수만 있다면 식의 믿음은 하나님의 심판을 묵상하고 싶어하지 않고, 하나님을 산타클로스나 키다리 아저씨처럼 항상 안아주는 좋은 모습으로만 생각하려고 한다. 

 

5. 이성적(Cerebral)

 

건강한 기독교에 교리와 성경 지식은 필수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지적인 믿음은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올바른 믿음”이 삶과 분리되어 따로 놀 때, 특히 더 문제가 된다. 교리 교육과 건전한 가르침을 올바르게 강조하는 특정 기독교가 있을 수 있겠지만, 신앙이 가시적으로 형성하는 바른 삶과 믿음이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건 재앙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너무 많은 그리스도인이 정답을 알면서도 바로 살지 못한다. 너무도 많은 교회가 믿음과 삶을 적절하게 연결하지 않는다. 이러한 단절은 변화하는 문화 속에서 지속 가능한 믿음을 갖는 데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문화적 바람

 

내가 가진 기독교 신앙에 이 다섯 가지 구조적 결함(또는 조합된 형태) 중 어떤 것이 포함되어 있다면, 문화적 역풍이 불 때 흔들릴 것이다. 그리고 성 윤리 문제에 관한 바람은 그냥 바람이 아닌 진짜 강풍이다. 

 

다음은 다섯 가지 왜곡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타협하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1. 소비주의

 

“자기 발전(self-enhancement)”이라는 용어로 프레임화된 믿음은 고통을 견디지 못한다. 부수적인 혜택이 주는 만큼 견딜 뿐이다. 사회적 낙인, 문화적 주변화(marginalization), 긴장 관계의 우정과 같은 미세한 비용이 관련되어 있다. 소비자 기독교인은 예수를 따르는데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명령을 편리하게 제거하는 맞춤형 영성을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언제라도 선회할 수 있다. 

 

이런 믿음은 정통 기독교, 특히 성에 관해 말하는 것이 문화적으로, 관계적으로, 직업적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시대에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편견에 치우친 기독교 신앙”과 관련을 맺는 한 사회적 상승이 불가능한 산업에서 일하거나 도시에 거주하는 경우에 또는 단지 성에 관한 “압제적인” 성경의 제약에서 개인적으로 벗어나고 싶은 경우이든지 간에, 소비자 믿음은 타협하는 믿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표현적 개인주의와 자율성 - 각 사람이 선택하는 고유한 방식으로 얼마든지 행복하고 긍정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권리 – 이 가진 우위는 성 윤리 문제에 대한 소비주의적 믿음을 희미하게 만든다. 표현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자의 행복이 성경의 권위보다 더 높은 선으로 여겨진다면(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기능적으로 그렇다), 성경은 당연히 자아를 위해서 배제될 것이다.

 

2. 실용주의

 

성에 대한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은 점점 더 크게 여론과 충돌한다. 이건 기독교에 피해를 주는 광고이다. 또한 이 문제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믿음이 주는 효용성을 강조함으로 전도하고 싶어하는 실용주의 신자에게 딜레마를 제시한다. 단지 성 윤리라는 한 가지 문제 때문에 믿음을 가지려는 사람이 망설일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실용주의 기독교는 성경의 성 윤리를 무시하거나 재해석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계산된 결정을 내린다. 

 

이 접근 방식은 대형 교회나 많은 돈이 걸린 단체와 기독 관련 산업체(CCM 참조)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생존 여부가 성경의 가르침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청중(돈)이 가장 많이 가는 방향에 달려있다고 믿기에 거기에 맞춰서 교리를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서, 많은 기독교인은 타협을 선택할 것이다. 

 

3. 정치적

 

정통이란 말은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어떤 국가라도 단정하고 당파적이며 정치적인 시스템과는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성 윤리에 관해서 나는 정치적으로 좌파 성향을 가진 소수의 기독교인이 정치 프로그램에 필요한 “패키지 거래” 때문에 기꺼이 자신의 성경적 신념을 바꾸는 모습을 꾸준하게 목격하고 있다. 공개적으로 무지개 깃발을 흔들지 않고서는 오늘날 좌파가 정치적 타당성을 주장할 수 없다. 확실히 성 윤리 문제는 최근 몇 년 동안 보수 지도자들의 일탈적인 성적 행동을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는 우파의 정치화된 기독교도 같이 괴롭히고 있다.

 

4. 감정적

 

“좋은 느낌만” 계속 될 수 있다면 식의 치료적 기독교는 동성에게 끌리는 여성에게 성적 욕망에 따라 살기보다 독신의 십자가를 지라고 요구하는 하나님을 도무지 헤아릴 수 없다. 하나님이 그런 끔찍한 요구를 할 리 없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하나님이 단순히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진행 경향은 다음과 같다.

 

(1) LGBTQ인 기독교인의 친구나 가족이 교회에 나온다. 

(2) 기독교인은 이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서로의 성적 정체성을 확인해야 한다고 가정한다(또는 불확실한 용어로 그렇게 듣는다).

(3) 기독교인은 이 사랑하는 사람의 성 정체성을 긍정하는 것과 그 주제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긍정하는 것은 상호 배타적임을 깨닫는다.

(4) 그리스도인은 그 주제에 대한 성경의 권위를 경시하거나 “다시 생각” 함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긍정하기로 선택한다.

 

이런 식의 변화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사실에 호소함으로써 정당화된다. 그러나 그 구절에서 “사랑”은 성경이 말하는 객관적이고 하나님이 정의한 사랑이 아니라 우리가 정의하는 주관적이고 자기지시적인 사랑이다 (“사랑은 사랑이다”).

 

5. 이성적

 

지적이고 교리에 깊이 빠진 기독교인이라면 성 윤리에 대한 문화적 태풍이 몰아치는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흔들리지 않고 확고한 말씀의 기반 위에 설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믿음과 행동 사이의 치명적인 단절이다. 비밀 포르노 중독에 빠진 교회 개척자, 여자 친구와 동침하는 신학생, 혼외 정사를 하면서 동성 결혼을 반대하는 목사. 극단적인 예이지만, 성경적 진리를 깨닫는 지적인 현실과 그 진리를 삶에서 실천하는 것 사이의 연결이 단절된 사람이라면, 그 단절이 아무리 미묘하더라도 거의 필연적으로 타협하게 된다. 

 

성경에 정통한 많은 젊은이들조차 오늘날 성 윤리에 타협하는 이유 중 하나가 너무도 많은 기독교인의 위선적인 삶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런 기독교인에게 기독교적 확신은 그들의 실제 삶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결과 시간이 갈수록, “당신 믿음이 진짜입니까?”는 점점 더 중요한 질문이 된다. 

 

바람을 견딜 수 있을까?

 

아마도 당신은 이 글을 읽고 하나 이상의 카테고리에서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놀라지 않아도 된다. 21세기 성 윤리의 폭풍우를 이겨낼 수 있도록 믿음을 굳건히 하고, 또 갈라진 틈과 구멍을 메우라는 경고와 도전으로 받아들이라.

 

성 윤리에 관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 타협하는 사람들을 비웃는 대신 그런 일이 내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지금 당장 당신의 믿음을 점검하라. 그리고 마음을 살펴보라.  

 

당신이 믿는 기독교가 그리스도 외에 다른 어떤 것에 달려 있는가? 마음에 들어서? 편안함을 줘서? 권력을 줘서? 행복해서? 옳기 때문에? 만일 그렇다면, 그 모든 기초가 움직이는 모래와 같으며, 당신은 마태복음 7장 26-27절이 말하는 어리석은 건축자와 다르지 않다. 바람이 불면 무너지는 믿음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건축자처럼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확고하게 믿음의 뿌리를 내린다면, 그래서 (오늘날 아무리 인기가 없어도) 주님의 사역과 말씀의 충분성을 확신할 뿐 아니라 그 진리에 만족한다면, 당신이 만들어가는 믿음의 집은 든든하게 설 것이다. 

 

원제: 5 Foundations That Lead to Compromise on Sexual Ethics

(www.thegospelcoalition.org)

저자 브랫 맥크레켄(Brett Mccracken)은 미국 TGC의 편집장으로 Southlands Church에서 장로로 섬기고 있으며, 'Hipster Christianity: When Church and Cool Collide'를 비롯하여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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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미국에서 시작되어 팀 켈러 목사와 존 파이퍼 목사 등이 이끄는 TGC(The Gospel Coalition; 복음연합)의 한국어 사이트(tgckorea.org)가 2018년 11월 오픈되어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주제의 글과 동영상이 매일 새롭게 업로드 되고 있다. TGC코리아는 TGC는 물론 개혁주의 신앙을 전달하는 또 다른 인기 사이트인 Desiring God(존 파이퍼), Ligonier(R.C. 스프로울), 9 Marks(마크 데버), Unlimited Grace(브라이언 채플)의 수준 높은 자료들을 공식적으로 허락받아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 TGC코리아(https://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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