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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모 목사 "한국기독교 100년 선교에서 평신도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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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21-05-19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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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실버미션과 뉴저지실버미션은 코비드19 팬데믹의 상황가운데 함께 연합하여 실버 선교학교를 3월 22일부터 5월 31일까지 줌을 이용한 화상으로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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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월) 저녁에는 조진모 목사(전 합동신학대학원 교수)가 "한국기독교 100년 선교에서 평신도의 역할"라는 주제의 강의를 통해 한국 기독교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나아가 기독교의 사회적 소임을 회복하는데 평신도의 역할과 중요성을 시대적으로 정리했다.

 

1.

 

조 목사는 먼저 “평신도”의 역사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30여년 전에 “평깨”라는 신조어 유행했다. 옥한흠 목사의 <평신도를 깨운다>라는 책 제목의 약자이다. 평신도를 깨운다는 말이 돌기 시작하며, 평신도는 누구인데 누가 평신도를 깨우는가 하는 질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교역자가 평신도를 깨운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목회자들이 훈련을 받고 교회에서 “평깨”를 주제로 제자훈련을 했다. 그때 목사들 사이에는 ‘평신도를 너무 확 깨우지 말라’는 조크도 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평신도만 아니라 목회자도 깨워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이전에는 목회자와 평신도가 정확하게 구분이 안되고 교회의 구성요원으로 이해했지만, “평깨”가 하나의 획을 그어 목회자와 평신도를 이원론적으로 나누게 되었다.

 

성경에는 ‘평신도’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언어적 근원은 ‘하나님의 백성’을 통칭하는 헬라어 ‘라오스’로 집합개념으로 사용되었다. 하나님과의 대비되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우리로 말하면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별하지 않고 한 덩어리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라오스’에서 평신도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인 ‘lay’가 나왔다. 

 

고대 사회에서는 교육을 통해 전문 지식을 가지고 사회를 통치하고 주도하던 계층을 ‘클레로스’라고 불렀다. ‘클레로스’에서 성직자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clergy’가 나왔다. 이때 ‘라오스’는 고대 사회에서 ‘클레로스’와 대조되어, 아래 계층에 있는 사람 그리고 많이 배우지 못한 전문지식이 없는 계층의 사람이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초대교회는 교회 안에 누구는 높고 누구는 낮다는 개념이 없었다. 오늘날의 개념으로 모든 성도가 맡은 직분은 다르지만, 은사에 따라 목사와 장로 등 다른 직분을 허락해주셨다는 것이다. 상하개념이 아니라 주님의 교회를 함께 세워가는 다른 직분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5세기가 되어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교회가 많아지게 되니 통제가 안되니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을 세우고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돕도록 했다. 초대교회는 높고 낮다는 개념보다는 각각 다른 사람이 하나가 되어 추진해 나갔다.

 

313년에 콘스탄티누스가 종교의 자유를 주었으며, 381년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었다. 그리고 성직자의 위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온갖 특혜를 받았다. 세금도 안내고 받는 것 많았다. 정치와 교회가 교류를 하면서 힘을 얻게 되면서 성직자의 위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게르만족의 이동이 중요하다. 로마제국과 교회가 함께 가다 로마제국은 멸망했지만 교회는 그대로 남았다. 게르만족이 유럽을 장악하며 정치를 하려고 할 때 교회의 도움을 얻었다. 반대급부로 교회는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 공존의 관계가 된다.

 

요즘 목회자의 위상이 높다고 비판할 때 중세교회와 같다고 비판한다. 중세교회에 들어가면서 성직자의 위치가 전과 달리 높아졌다. 특별 계층이 되었다. 삶이 달랐다. 다른 옷을 입었고 결혼도 안하고 무엇인가 다른 삶을 살았다. 그리고 당시에 보통사람들은 엄두를 내지 못했던 교육도 받았다. 그때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중세교회를 지나가며 성직자의 위치가 높아졌다. 7성례라고 해서 성직자가 없이는 하나님께 갈 수 없으며, 교회생활도 불가능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모든 것이 사제의 손이 필요했다. 사제가 미사가 집전하고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것이 로마 가톨릭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하나님과 일반백성 사이에 있는 성직자의 위치가 부상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그것에 큰 반감을 가졌다. 그들은 베드로 전서의 말씀에 근거해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했다. 사제를 통하지 않고서도 우리가 직접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의미로 확 뒤집어졌다. 

 

종교개혁하면 여러 의미가 있지만, 가장 두드러진 것이 중교개혁이 필요한 원인이 되는 하나님의 1대1의 관계에서 교회를 통하고 사제를 통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힘입어 하나님 앞에 직접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그러자 평신도 위치가 달라졌다. 중세교회로 오면서 망가진 평신도의 성경적인 위치를 다시 원위치로 되돌려 놓은 것이다.

 

하지만 이후 많이 달라졌다. 계몽주의가 나타나고 19~20세기에 여러 사조들이 있었다. 2차례 세계대전이 지금까지 전통이 다 무너뜨렸다. 세속화가 꿈틀거렸다. 세속화란 하나님의 위치에 내가 올라가 하나님이 필요없게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이 되는 것이 세속화이다.

 

세속화가 진행되며 사람들은 다른 눈을 뜨기 시작하고 권위를 싫어하게 되었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권위조차 무시하는 상황속에서 성직자의 권위도 무너졌다. 지금은 성직자에 대한 개념이 사람에 따라 뒤죽박죽인 상태이다.

 

성직자와 평신도를 상하관계로 자꾸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좁은 의미로 보았을 때는 안수를 받은 자와 안수를 받지 않은 자와 구분하는 것이고, 성경적인 내용은 모두 ‘라오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개념이다. 은사에 따라 맡은 직분을 다르지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큰 덩어리로 생각하며 협조하며, 한마음으로 동행한다. 마치 마차의 두 바퀴처럼 성직자와 평신도가 함께 주의 교회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누가 높고 낮다는 것을 생각하기 전에 과연 나는 하나님나라 전체에서 어디에 있는가 보는 것이 좋다.

 

한국교회는 전통적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초기부터 성도들이 교회 지도자들, 즉 선교사 또는 목회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르는 풍토가 자리를 잡았다. 불행하게도 1980년대의 교회성장이후, 성직자와 평신도의 정체성과 기능에 대한 이해 차이로 인해 불미스런 일들이 간혹 일어나고 있다.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선교사의 권위를 인정했다. 기독교를 수입한 선교사들이 모두 목회자들이다. 1907년까지는 한국인 목사가 없었다. 그래서 전에는 선교사만 목사이고 세례를 줄 수 있었다. 이후 한국인 목회자들이 배출되며 선교사 같은 분으로 생각해서 성도들이 존경하고 따랐다. 세월이 바뀌어 한국교회는 1970년대까지는 괜찮았는데 80년대에 들어와 사회가 성장하고 평신도들의 머리가 깨면서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성직자와 평신도는 서로 높다 낮다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가 있다면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것이 있으실 텐데 과연 나에게 주신 은사를 어떤 자리에서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지 스스로 살펴보았으면 좋겠다.

 

2.

 

이어 ‘선교적 관점’에서 한국기독교 100년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각 시대별 평신도의 역할에 대해서 간단히 나누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시대의 사회적 소임 회복을 위한 평신도의 역할”에 나누었는데 다음은 교재에 나와 있는 내용들이다. 

 

첫째, 선행되어야 하는 질문을 기억하자: 나는 누구인가? 

 

사명에 불타는 성도들의 공통점은 가급적 속히 주님의 일을 완수하고자 하는 열정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급함으로 인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중요한 질문을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다. 모든 주님의 일꾼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항상 지니고 있어야 한다. 

 

‘평신도’의 정체성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이 있다. 각 개인이 ‘흩어지는 교회’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회’라고 할 때 건물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신앙 훈련 받은 성도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구별된 성도가 교회라고 말한다. 옳은 답이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교회는 개인의 삶으로 흩어지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평신도는 세상 속에서 1주일 동안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야한다.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으면, 1주일 동안 신앙의 축을 자신으로부터 멀리 둔 채 지내게 된다. 평신도는 성도들이 함께 모였다가 혼자 지내야 하는 시간부터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주도해야 한다. 신앙인의 신분으로 교회로 모이듯, 흩어지는 교회라는 신앙인의 신분을 항상 유지하는 것이다. 

 

다른 성도와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가 중요하다고 인정한다면, 개인적으로 흩어진 교회로 올바로 사는 것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자의 삶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은 성도가 ‘무엇을 하느냐?’에 관심을 두시지만, 그가 ‘누구인가?’라는 관점에서 자신을 섬기는 자의 마음의 본성을 살피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각자 주어진 소명에 최선을 다하자! 

 

16세기 종교 개혁가들은 중세 교회가 범한 오류를 지적하면서 교회의 개혁을 주도해 나아갔다. 그들이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였던 것 중의 하나는, 평신도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츠빙글리, 루터, 칼빈과 같은 개혁가들은 성직자의 신분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였다. 그들은 평신도들에게 은혜를 받으면 무조건 안수를 받고 성직자가 되라고 권유하지 않았다. 물론 성직만이 거룩한 직업이라고 하지도 않았다. 성직자가 맡은 임무가 독특하듯, 각 개인 역시 그들의 삶에 하나님께서 독특한 방법으로 살아가도록 섭리하신다고 가르쳤다. 

 

평신도들은 성직자와 다르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신학과 목회에 대한 전문적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신학과 성경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훌륭한 목회적 마인드를 지닌 평신도들도 있다. 즉, 개인의 실력을 두고 평신도와 성직자를 구분하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이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소명 의식이다. 성직자는 자신의 능력이나 경험 정도면 어느 정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수를 받기 전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직분이기에 그 소명이란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신도는 소명을 받지 못했다는 것인가? 아니다. 이미 종교개혁자들이 이 질문에 분명한 답을 제시하였다. 소명의 적용이 성직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신분이든지 하나님이 그에게 특별히 허락하신 것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직분, 즉 장로, 집사, 권사, 찬양대, 구역장, 주차장사역자, 주방사역자.. 모두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소명으로 나눠주신 것이다. 회사나 가게의 주인으로 운영하거나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거나 상관없이 각자에게 소명을 주신 것이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에게도 빈번한 해외 출장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아버지에게도 그 위치에서 가정을 세워가는 소명을 주신 것이다. 

 

유교적 문화에서 평신도가 성직자를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평신도가 성직자보다 결코 열등하지 않다. 단지 소명이 다를 뿐이다. 세상의 거친 파도 속에서 신앙을 지키며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다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매우 귀하게 여기신다. 이 세상이 다 지나간 뒤,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그 직분과 직업에 상관없이 하나님 허락하신 소명에 충실하였느냐를 물으실 것이다. 모든 평신도들이 삶의 위치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께 큰 기쁨이 될 것을 확신한다. 

 

셋째, 주님의 뜻을 밝히는 영적 촛불로 살아가자. 

 

역사적으로 교회의 타락은 남에게 무엇을 보이려 할 때 생겨났다. 아예 남을 의식하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도 있지만, 지나치게 남의 눈과 의견을 의식할 때에 자신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위장하는 경우가 많다. 율법주의에 붙잡혀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무쪼록 진정한 자유를 상실하고 자신이 아닌 다른 모습에 노예로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의 태도를 지녀야 할까? ‘코람데오’, 즉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천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의식한다고 하면, 자신의 영적 상태와 신앙 행위에 따라 화 또는 복을 결정하시는 분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신앙인의 입장에서 코람데오 사상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더하게 할 수도 있다. 이로서 더욱 주님과 사람들 앞에서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코람데오’를 보다 적극적으로 이해하자면, 전지전능하시며 세상의 모든 것을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현재 나의 마음 상태와 하는 일을 상세히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한다. 또한 그러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기에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전념할 수 있게 한다. 나아가서 분주한 삶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그 분의 마음과 생각이 머물러 있는 일을 중심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게 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소명을 주신 것으로 확신한다면, 주님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하)”라고 하신 말씀이 지닌 적용적 의미를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우리 주님은 어둠을 밝히는 빛이셨다. 그는 언제나 어디서나 그 빛을 드러내셨다. 특정한 일을 할 때만 자신의 빛을 꺼내어 비치신 것이 아니었다. 당장 이 어두운 세상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는 꾸준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였다. 

 

선교지에 가서 복음의 빛을 전파하는 소명을 지녔다면, 그 사명이 구체적으로 시작되기 전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빛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시간과 장소에 국한하여 환한 빛을 밝히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가정과 주위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복음의 빛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즉 자신이 먼저 주님의 십자가 복음에 붙잡히고 성령에 충만하여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선교지에서 헐벗고 불쌍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고 어떻게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자신을 향해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과연 나는 현재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 주위의 사람들과 복음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는 대상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주님께서 우리를 세상 속으로 보내셨다. 그 세상은 외국 땅을 포함하고 있지만, 내 자신이 현재 살아가고 있는 곳이 가장 먼저란 사실을 기억하자. 이 어두운 사회를 밝히기 위해 자신을 태우는 촛불로 살아가자. 주님의 영광스런 뜻을 드러내는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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