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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길 목사가 아버지 순교 70주년 기념예배서 전한 3가지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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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ㆍ2020-12-0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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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동철 목사 순교 70주년 기념예배가 11월 29일 주일 오후 2시 서소문교회에서 열렸다. 김창길 목사(뉴저지장로교회 원로목사)는 아버지의 순교 70주년 예배를 위해 14일 자가격리의 불편을 안고 한국에 가 서소문교회 성도들에게 교회설립 목사의 신앙을 전했다. 

 

1.

 

기념 행사는 서소문교회 이경욱 담임목사의 사회로 진행됐다. 1부 예배는 기도 조덕천 원로장로, 설교 임은빈 목사(총회순교자 기념선교회 회장), 축도 김호일 목사(서소문교회 원로목사)의 순서로 진행됐다. 2부 기념식은 축사 이응삼 목사(한국교회 순교자 기념사업회 상임 부이사장), 회고담 김창길 목사, 고 김동철 목사 추모 영상 상영, 인사 및 광고 배해일 장로(서기)의 순서로 진행됐다.

 

2.

 

야성 김동철 목사는 1899년 함경북도 길주에서 출생했다. 1906년 부모를 따라 만주로 이주하고 소명을 받고 서울로 돌아와 1926년에 협성신학교 졸업했다. 1928년 선교연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다시 만주로 돌아가 1928~30년 만주 용정감리교회 담임목사, 1930~32년 용안감리교회 담임목사, 1933~34 목단강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했다. 

 

김동철 목사는 신경시로 사역지를 옮기고 1935~45년 임신정교회 개척 및 담임하며 묵단강가에서 국적없이 방황하는 한국인들을 섬겼다. 1945년 해방후 임신정교회 제직회의 결의로 교우들과 귀국하여 1946년에 서소문교회 개척 및 담임했다. 4년 뒤인 1950년에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8월 납북되고 12월에 압록강 연안에서 순교했다. 김동철 목사는 안마리아 사모와 1920년 결혼하여 6형제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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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소문교회는 순교 70주년 추모영상을 통해 “외세나 환경에 동요할 줄 몰랐던 목사는 오직 주님의 옷자락만 붙잡고 헐벗고 굶주린 이웃의 벗이 되기를 기도하다 공산당의 고초를 당해 마침내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교회 설립 목사를 기억했다.

 

서소문교회는 고 김동철 목사가 공산당에 잡혀가던 날 선포한 마지막 새벽설교를 소개하고 있다. "고통과 역경에서, 수난과 죽음에서 우리를 살리신 이는 오직 주님뿐이십니다. 공산당을 신뢰하지 말고, 미국이라 천사라고 하지 맙시다.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삽시다."

 

4.

 

임은빈 목사(총회순교자 기념선교회 회장)는 로마서 12:1~2를 본문으로 “영적예배”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임은빈 목사는 “영적예배라는 것은 몸을 드리라는 것이다. 원래 몸은 주님이 핏값으로 사신 주님의 것이고, 부활의 주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주인이 되셨기에 이미 주님의 것이다. 그러나 예수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내가 주인이 되어서 주인노릇하며 산다”고 경계했다.

 

임 목사는 그러한 고민 끝에 저녁 30분을 주님께 드리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며 그 내용을 소개했는데 “영적 다이어트 운동이다. 30분만이라도 주님만 생각하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보고 30분만이라도 노력하는 신앙생활을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스스로 노력으로는 안된다. 성령님이 나를 만들어 가신다. 정확히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왜 순교의 피를 흘리셨는가? 여러분의 모두를 향한 주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피를 쏟으신 것이다. 그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임해야 한다”라고 마무리했다.

 

축사를 통해 이응삼 목사(한국교회 순교자 기념사업회 상임부이사장)는 “올해는 육이오 70주년으로 많은 주의 종들이 순교의 제물이 된 해이다. 70년 전에 스데반 집사와 예수님 12제자처럼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하면서 천국에 가셨다. 이 시간 천국에서 예배를 지켜보며 흡족해하는 그분들의 모습을 믿음의 눈을 들어 바라보는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라며 다시 순교신앙으로 무장하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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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교회에 있는 고 김동철 목사 순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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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동철 목사가 납치되기 전 마지막 가족사진
 

5.

 

고 김동철 목사의 아들 김창길 목사가 아버지를 회고했다. 팬데믹의 상황 가운데 영상으로 찍어 보내도 모두 이해할텐데, 김창길 목사가 서소문교회 담임목사로부터 예배를 드린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

 

서소문교회 주일학교와 중고등부 친구를 만난 김창길 목사는 먼저 반갑게 인사했다. 그리고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말씀으로 발언을 시작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김창길 목사는 10살이었다. 전쟁이 일어나고 2달여 지난 8월 23일 김동철 목사는 집에서 아들 김창길 소년이 보는 가운데 한 청년과 같이 나간 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오기 전 집에 찾아온 청년에게 1시간 뒤에 아버지가 돌아온다고 말한 김창길 소년은 이후 마치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피납되었다는 죄책감에 오랫동안 살았다.

 

아버지가 피납되고 고학을 하며 어려운 생활을 한 김창길 목사는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목사가 되고 철이 들면서 아버지가 어떤 아버지인지를 다시 생각하고 느끼게 되었다. 그 메시지를 아버지가 설립한 서소문교회 성도들에게 남겼는데 그것은 바로 순교자적인 예수제일주의 신앙, 자유민주주의 중심의 신앙, 그리고 빛과 소금으로 사회에 대해 책임지는 신앙을 가진 서소문교회가 되라고 부탁했다.

 

한 마디로 전쟁이 나고 김동철 목사가 가족과 함께 피난을 갔으면 안전했다. 전쟁이 일어나고 서울의 영락교회와 정동교회 목사들은 다 피난을 갔다. 하지만 서소문교회는 예배를 계속 드렸다. 그러자 목사가 피난간 교회 성도들이 와서 예배를 같이 드렸다.

 

김동철 목사는 가족들의 권유에도 피난을 가지 않았다. 사모는 만주에서 해방을 맞이하고 서울에 돌아오기 전에 공산당에 고생을 많이 해서 전쟁이 나자 피난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동철 목사는 “나만 살려고 교인을 두고 가느냐”라며 반대했다. 사모는 울면서 피난을 가자고 김 목사와 언쟁을 했다. 결국 김동철 목사는 자신은 남겠다며 사모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을 가라고 했다. 

 

할 수 없이 사모와 아이들이 피난을 갔지만 삼각지에 도착하니 한강 다리를 끓겨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김동철 목사가 반대하지 않고 바로 피난을 갔다면 충분히 한강을 건너갈 수 있었을 것이다. 김창길 목사는 “아버지는 주님을 바라보며 교회를 위해 교인들을 위해 피난을 떠나지 않으셨다”고 했다. 결국 그 결정은 납치와 순교로 이어졌다.

 

창립 목사의 순교의 정신이 2대 목사인 서금찬 목사에게 이어졌다. 역시 북한에서 내려온 서 목사는 강단에서 늘 예수제일주의를 설교했다. 김창길 목사는 “당시에는 그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지나갔지만, 목회를 하며 순교자적인 삶이 아니면 예수제일주의로 못산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가 왜 공산당에 끌려가면서도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예수제일주의로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김창길 목사는 서소문교회는 공산주의가 싫어 자유민주주의로 피난 온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라고 강조했다. 김동철 목사는 만주에서 공산당이 피난해서 와 서소문교회를 설립했으며, 2대 서금찬 목사도 북한이 공산화되어 피난을 왔다. 김 목사는 “공산주의는 하나님이 없다. 가장 먼저 죽이는 대상이 예수 믿는 사람이고 목사이다. 세대와 상황은 변했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서소문교회는 공산당이 힘들어 피난해 모인 교회이다. 서소문교회는 순교신앙과 자유민주주의 편에 서서 신앙을 이어가라”고 부탁했다.

 

마지막으로 김창길 목사는 “서소문교회는 서울시내에 가장 중심에 있다. 지금은 큰 교회들이 많이 건축되었지만 당시에는 이렇게 좋은 교회가 없어서 견학을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중심에 있는 서소문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해 달라. 특히 젊은 세대들을 키워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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